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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Couch)에 누워서 정신분석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

 

 자아 해체, 자아 소멸(자아 장애 치료) 1

 

자아(self)라는 말은 20세기 중반기에 등장을 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창설했을 당시에는 자아(self)라는 말 대신에 라는 말로 ego를 사용을 했다(영어 사전에는 ego self는 둘 다 자아, 나로 번역).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Vienna – 영어로는 비엔나 독일어로는 빈) 출신으로 그는 독일어를 사용해서 정신분석학을 썼다. 그런데 영국 출신의 제임즈 스트라취(James Strachey)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소개 받고 정신분석을 공부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에 와서 프로이트 밑에서 2년 동안 공부를 한 후에 영국으로 돌아가서 프로이트의 독일어로 된 정신분석의 모든 논문과 서적들을 프로이트의 허락을 받아서 영어로 번역을 하게 되었다.

제임즈 스트라취는 정신분석 자격증을 얻어서 영국에서 정신분석 학교를 세우고 수 많은 정신분석가들을 배출하게 된다. 그의 지도를 11년 동안 받아서 세계적인 정신분석가가 된 도날드 위니코트(Donald Winnicott)가 있다. 죠안 리비에는 프로이트의 전기를 쓴 영국인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어네스트 존(Ernest Jones)한데서 수학을 받은 초대 여성 분석가로 그녀의 뒤를 이어서 영국에서 초반기 5명의 여성 정신분석가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죠안 리비에(Joan Riviere), 마가렛트 리들(Margaret Little), 슈잔 이삭(Susan Isaacs), 폴러 헤이만(Faula Heisman), 실비아 페인(Sylvia Payne) 등이 그들이다. 죠안 리비에는 그녀의 스승인 어네스트 존을 설득해서 비엔나에서 처음으로 소아 정신분석을 개발하고 있던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을 영국으로 초대해서 영국에서 대상관계 이론을 창립하는 공적을 남기게 한 장본인이다. 폴라 헤이만은 1950년에 정신분석 역사상 최초로 반전이 논문을 발표한 여성 분석가이고 1951년에 마가레트 리틀이 이어서 반전이 논문을 발표해서 반전이의 연구의 길을 열어 준 공헌자들이다. 실비아 페인은 소아 정신분석의 초반기 시점에서 프로이트의 막내 딸 안나 프로이트와 메라니 크레인 사이에 이론적 갈등으로 영국에서 정신분석이 두 개의 학파로 나누어지게 되자 실비아 페인이 1944년에 두 사람을 설득해서 서로 화해를 하도록 하는 신사 협정을 채결하도록 중재 역할을 한 장본인이다(Ellenberger, 1970).

제임즈 스트라취는 프로이트가 독일어로 쓴 나(I)를 영어로 번역할 만한 적당한 말이 없어서 그는 자아를 ego라는 말로 그리고 독일어로 그것(its)이라는 말을 원초자아인 id로 번역을 했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마음을 이끌고 가는 3두 마차로써 자아(ego), 원초자아(id), 초자아(superego)라는 말이 처음으로 탄생하게 되었다(독일어에는 ego, id, superego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음).

그런데 오스트리아가 제 2차 세계대전 직전에 독일에 의해서 점령 당하게 됨으로써 유태인들의 박해가 시작되면서 유태인이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금지되고 폐기되고 그리고 프로이트는 영국에서 제자들 즉 제임즈 스트라취와 어네스트 존(Ernest Jones) 등의 초대를 받아서 독일 통치의 오스트리아에서 1938 6월에 추방되어 영국으로 건너갔다. 나치의 박해로 수 많은 유럽의 정신분석가들이 대거 미국으로 남 아메리카 등으로 세계적으로 흩어져서 정신분석의 복음의 씨앗이 된 것은 널이 알려져 있는 일화이다.

2 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패배로 영국과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이후에 독일어로 된 정신분석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독일어의 정신분석이 영어로 된 번역판이 정신분석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되었다. 20세기 후반기에 독일에서 정신분석을 연구하고 치료를 하는 학자들은 영어의 정신분석의 원본을 다시 독일어로 번역해서 사용하는 모순적인 일들이 벌어졌다(Ellenberger, 1970). 참고로 독일에서는 융(Jung)의 분석 심리학이 발전한 반면에 정신분석학이 취약하고 미미하다는 점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영국에서 대가들이 쏟아져 나왔고 미국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는 정신분석학자들이 양적으로는 많지만 대상관계 이론(크레인과 페비안), 애착이론(존 볼비(John Bowlby), 안아주기 이론(위니코트), 충격흡수(비용(Bion) 등이 모두 영국인이 아닌가! 이것은 프로이트가 영국에 뿌린 씨앗의 결과이고 영국인들이 프로이트의 새로운 이론을 수용해서 발전시킨 공로를 말해주고 있다.

다시 자아 해체, 자아 소멸의 제목으로 되돌아가 보자.

정신분석에서 자아(self)라는 용어가 프로이트의 ego와 혼란이 생기게 되면서 정신분석가인 하트만(Hartmann) ego는 마음의 삼두마차에서 행정 기능을 담당하는 자아로 정의를 하게 되면서 여기에다 프로이트의 막내 딸인 안나 프로이드(Anna Freud)가 정신분석을 이어받게 되면서 1938년에 “ego의 방어기재라는 저서로써 ego의 힘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새로운 ego 중심의 학문인 ego 심리학이 새로 탄생하게 되었다. Ego의 자아(self) 보호 기능인 방어 기재들, 적응기능들, 학습 기능들, 조정 기능들,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는 기능들 등이 하나씩 첨가되어지면서 프로이트의 생물학적인 본능 이론의 정신분석이 이후에는 프로이트의 마음의 구조 이론의 등장으로 욕구 이론들에 바탕을 둔 원초자아 심리학에서 ego 심리학으로 형태가 바뀌게 된다.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하트만이 자아라는 말의 self는 나와 너의 구분을 하는 용어로 영어에서 self 혹은 subject인 나로 그리고 너, 대상이라는 말로써 영어로 object라는 말로 구분으로 정의가 되어지면서 이후에는 ego(마음의 기능) self(너와 반대로 전체 내 경험인 나)가 명확하게 구분되어지게 되었다.

이후에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가로 미국에 이민을 간 코호트(Kohut)에 의해서 자아 심리학(self psychology)(아래에서 상세히 설명 참조)이 새롭게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 프로이트가 창설한 정신분석학이 정통파 정신분석학, ego 심리학, 그리고 자아 심리학으로 세분화 되어졌고 그리고 여기에 생리 심리학과 인본주의 심리학(프로이트의 환자 치료 심리학에 대한 반대로썬 건강한 인간 중심의 심리학인 인본주의 심리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더 붙여서 실험실에서 과학을 표방하면서 등장한 행동 심리학인 실험 심리학 등이 심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치료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다.

다시 정신분석학으로 되돌아가 보자.

프로이트(Freud, 1924)는 그의 논문 신경증와 정신증(1924)”“신경증과 정신증 안에서 현실의 상실(1924)”에서 신경증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과학적인 원리 즉 물리 화학적인 이론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즉 신경증은 마음의 삼두마차인 ego가 마음의 전체를 컨트롤하고 있지만 본능적 욕구들을 담당하고 있는 원초자아가 불평 불만으로 반기를 들고 반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신경증을 정의를 했다. 그러나 ego는 마음의 전체를 잘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갈등과 어려움이 있지만 나를 대표 하는 전체적인 나인 자아(self)는 흔들리지 않고 현실 감각은 분명한 것을 신경증으로 정의를 했다(Stolorow, Atwood & Orange, 1993, 2002).

 대조적으로 정신증은 ego의 힘이 약해진 틈을 따서 원초자아가 평소에 욕구 불만족에 대한 불평과 불만 그리고 과도하게 욕구들을 억압하고 있는 ego의 컨트롤에 항의와 도전으로 ego의 컨트롤을 벗어나서 자아(self)를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있고 그리고 더욱 더 나아가서 원초자아가 자신이 마음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서(망상들)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지게 된 것을 정신증으로 정의를 했다. 따라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꿈이 현실로 대체되어져 버린 사람들이다.

 프로이트의 위와 같은 신경증과 정신증의 정의는 신경증 치료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많은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정신분석이 정신분열증의 치료와 성격장애의 치료와 자폐증의 치료 등으로 확대되어지면서 신경증과 정신증의 정의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프로이트의 좁은 의미의 정의는 정신증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1938년에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아돌프 스턴(Adolph Stern)이 신경증 환자들을 치료를 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공통점을 가진 새로운 신경증 환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현실 감각을 상실하고 늘 익숙한 환경들이 낯설게 보이고 현기증이 나고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메스꺼움과 구토가 나면서 휘청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자신이 아닌 것같이 느껴진다고 호소를 했다.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늘 익숙했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며 자아가 없는 자아 소멸 혹은 자아 상실감을 느낀다고 호소를 하는 사람들로써 그들은 현실 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정신분열증 환자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분명히 현실 검증 기능은 연약하지만 가지고 있었다. 고로 정신분열증은 아니었다(Wolf, 1988).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인 장 볼 싸르트르(Jean Paul Sartre)가 쓴 구토라는 작품의 주인공이 방향 감각 상실과 자아 상실의 이야기들이 기술되어졌다. 구토라는 작품의 주인공은 그가 늘 가던 카페가 이상하게 낯설게 보이고 늘 보는 익숙한 사람들이 낯선 사람으로 그들이 자신을 돌 아이로 보고 있다는 것으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더 붙여서 세상이 빙빙 도는 것처럼 느껴져서 현기증이 나고 메스꺼움과 구토를 느끼면서 갑자기 돌 아이가 되어버린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완전이 돌아버린 정신분열증은 아니었다. Ego가 연약해져서 자신감이 없어진 것은 분명했다. 세상이 이상하게 변해버린 것으로 보이고 자신이 이상하게 변해버린 것으로 느껴졌다(Wolf, 1988).

 신경증 보다 심각하지만 분명히 정신증은 아닌 중간 지역에 해당한다고 해서 이들을 보드라인(신경증과 정신증의 중간 지역인 그들의 경계선이 있다는 우리나라말로 경계선 장애) 장애로 부르는 학자들도 있고 또 일부 학자들은 자아 해체, 자아 소멸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자아 장애로 부르는 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건더슨(Gunderson)은 성격자애들을 체계적으로 분류를 해서 1980년에 3번째로 수정 보완이 된 미국 정신 의학 학회에서 발간하는 DSM-(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분류 지침서의 약자)의 축Ⅱ의 성격장애 파트에서 12개의 성격장애들의 정리를 한 장본인이다. 그는 이들을 성격장애자들을 분류를 하면서도 이들은 21세기에는 자아 장애자로 통합해서 불러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여기에서 등장한 사람들처럼 최근에 치료자 한데서 심리치료를 받게 된 사람들도 비슷한 증세들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A씨는 심한 우울증으로 7년 동안 우리나라의 최고 명문 의과 대학 교수로부터 처방된 약물 복용을 해 오고 있지만 증세의 차이들은 변화가 거의 없었다고 호소를 했다. 자신의 말대로 한 움큼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지만 우울증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문이라고 주장을 했다. 그는 모닝 승용차를 몰고 다니면서 과도하게 과속으로 추월 경쟁을 하고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들을 추적해서 보복을 했다. 마스크를 쓰고 각목으로 누구든지 걸리면 죽여버리겠다고 걸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은 묻지마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냉소적인 미소를 보였다. 그는 언어 폭력과 과도한 일 중독으로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자살하고 싶다고 했다. 살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그는 라스베가스 도박장에 가서 몇 만 달러를 잃었고 그리고 이름 있는 국내 도박장에서 3백 만원의 돈을 잃고 매춘부에 사기 당해서 1200만원을 날려버리고 지금은 빚이 2억이 된다고 호소를 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돌 아이로 본다고 두려워해서 낮에는 밖에 잘 나가지 않고 집에만 갇혀 있게 되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는 전처의 소개로 치료자를 찾아와서 약 350시간의 치료를 받아서( 4년 기간) 자신의 말대로 완치에서 약 2%의 부족을 남겨 놓고 있다고 스스로 고백을 했다.

 두 번째로 B씨는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 초에 자동차 사고로 아버지를 여읜 후에 그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누가 입에 독약을 넣을 것이라고 두려워해서 입을 다물고 침을 삼키지 않고 뱉어내면서 다녔다. 그는 머리 속에 죽음의 공포 때문에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음식을 잘못 먹게 되면 죽을 것이라고 두려워해서 쇠고기 돼지고기 등의 질긴 음식들과 닭고기와 생선고기들을 먹지 않아서 몸무게게 14kg이 감소되어 해골처럼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음식을 먹어도 소화 기관이 부실해서 소화가 되지 않아서 매일 저녁에 소화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도 중 2, 3학년 시점에서 식사를 할 때 음식을 100번 씹어 먹는 것을 4년 동안 반복하면서 소화기관은 회복이 되었고 몸무게도 정상으로 되돌아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뇨도 감염의 공포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소에서 소변의 배출을 확인을 하는 강박증으로 대체 되었다. 그는 3개월에 한번씩 비뇨기 과에 가서 약물과 검진으로 뇨도 감염 강박증의 감염 검진을 받고 있다가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5년 째 받고 있다.

C씨는 작년에 29세로 대학을 졸업을 했는데 정상인들의 두 배의 기간이 걸려서 졸업을 하고도 그 이후에 두문불출해서 외주에서 일거리를 받아서 부분적으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을 할 때 시작을 할 수 없다고 호소를 했다. 출발을 할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미루다가 결국은 데드라인에 갇혀서 죽기살기로 일을 하게 된다고 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고 죽지 못해서 하는 일로써 자신의 전공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를 했다. 그는 잡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매일 밤마다 뒹굴면서 잠을 자는데 피곤하고 숙면을 취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신경정신과 약물을 복용해 보았으나 도움이 되지 않아서 포기 했다고 했다. 심리 상담을 4개월간 받다가 실망해서 그만 두고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해서 정신과 서적들을 뒤적이게 되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소화 기능이 말을 듣지 않아서 늘 위와 장의 약물을 달고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6개월 째 받고 있다.

D씨는 자신의 자아가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온 사람으로 그는 부모님 특별히 어머니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그는 고교 시절의 야간 자습 후에 10-11시 경에 집에 돌아왔을 때 잠들어 자고 있는 어머니의 목을 졸라 죽이거나 혹은 수건으로 어머니의 입을 막아 줄이려고 6개월이나 계획을 세웠으나 실천은 하지 못했고 자살 직전에 치료자의 저서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구입해서 읽고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러 와서 10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아서 자아를 회복해 가고 있는 사람이다.

E씨는 27세의 나이로 5년간 정신병원에 3번이나 입원을 했던 학생으로 그는 이름 있는 명문 대학에 입학을 했으나 4번이나 입학과 휴학을 되풀이 해 오다가 스스로 자퇴를 한 사람으로 군에 입대해서 조울증과 정신분열증으로 입대 3개월 만에 의병 제대로 되돌아와서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학생이었다. 정신과 의사들의 약물 처방에 실패로 한의사에게 약 4개월간 침술 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역시 실패 했고 심리상담 치료를 3개월간 받아 보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다양한 민간요법 혹은 기도원에서 여러 번 기도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실패한 사람으로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요청해서 40 시간의 치료 과정에서 올해 3월 달에 xx 대학에 복학하여 중간 고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게 되었다고 처음으로 2010년에 대학 입학 후에 첫 중간고사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게 되었다고 기뻐하면서 왕복 7시간의 통근 거리에 2시간의 분석 치료를 받기 위해서 열심히 분석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F양은 29세의 여성으로 5년 만에 2번이나 정신병원에서 3개월과 2개월을 보낸 아가씨로써 그녀는 약물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호소를 했다. 그녀는 남자 친구가 그녀의 나체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서 그녀를 협박하고 그녀에게 돈을 보내라고 공갈 협박을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그들을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노발대발했다(치료자와 분석에서 망상임이 밝혀졌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 xx 회사에서 6개월간 비서 직으로 일을 하다가 그만둔 이후로는 5년간 제대로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사회생활이 안됨). 그녀는 부모님과 갈등으로 2년 전에 가출을 해서 3개월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작년 9월 달에 정신병원에서 2개월 입원 후에 2주일간 가출을 했다가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서 치료자에게 소개되어 8개월간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성공적으로 받고 있다. 그녀는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서도 지금은 일자리를 구해서 일을 하고 있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삶을 계획하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신경정신과에서 약물 치료의 실패로 그 다음에 한의사에게 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효과가 없어서 마지막으로 치료자를 찾아오는 자아 해체의 위협과 자아 소멸의 위협 때문에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의 대리만족으로 살고 있다고 호소를 하고 있었다. 자아가 죽어가는 삶, 자아가 죽어버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치료자를 찾아 왔다고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위와 같은 자아 해체, 자아 소멸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장기간 정신분석 치료(정신분석에서 신경증 환자는 최하 3-최고 5년이 평균)에서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치료 답보 상태(치료가 진전이 없는 제자리 걸음)가 계속되고 반전이 가 빈번하게 등장하게 되면서 새로운 정신분석 치료 기법으로 영국에서 시작된 대상관계 이론과 그리고 대인관계 정신분석 이론 그리고 자아 심리학이 주축이 되어서 그들을 바탕으로 한 새롭게 등장한 상호주관적 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치료기법이 등장을 했다(Stolorow, Atwood & Orange, 1993, 2002).

예일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의 타비스톡(Tavistock) 정신분석 치료센터에서 1년간 조교수로써 분석 치료를 하고 돌아와서 캘리포니아 주립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미국에서 유일하게 종합 대학의 의과대학이 아닌 독립된 의과대학 하나만으로 된 의과대학) 정신과 의사로써 정신분석학자인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UCLA 의과대학의 정신분석학자인 스톨로우(Stolorow)가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같은 상호주관적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전자는 후자와 달리 제 3의 분석 혹은 제 3의 주체라는 말로써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Ogden, 2005).

상호주관적 정신분석이라는 말은 프로이트가 마음을 고립시켜서 한 사람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설명을 함으로써 신경증 치료 이론으로 개발을 한 것에 대조적으로 정신분열증, 자폐증, 심한 성격장애 등의 환자들은 한 사람의 심리학이 아닌 두 사람의 심리학적인 정신분석 이론으로 설명되고 치료되어져야 효과적인 치료가 될 수 있다는 것에서 출발을 했다. 일찍이 니체가 네가 심연(깊은 물속)을 쳐다 보고 있을 때 그 심연 역시 너를 처다 보고 있다는 철학적인 용어에서 확대되어 치료를 하는 분석가는 치료를 받고 있는 분석을 받는 사람을 치료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관찰자인 분석가 역사 분석을 받는 환자로부터 관찰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아와 양육자는 돌봄을 받고 있지만 역시 돌봄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와 너는 관계를 하고 있지만 서로 상대적이 아닌가? 의식과 무의식은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따로 때어내어서 독단적으로 분리해서 다루어질 수가 없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고로 정신분석 치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전이와 반전이 는 서로 쌍방 관계로써 전체로써 보아야 하지 따로 떼어서 한가지로써 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Stolorow, Atwood & Orange, 1993, 2002)(Ogden, 2005).

위와 같은 상호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너와 나의 관계로 형성된 그 교집합적인 공통 부분은 한 사람의 주관이 아닌 공동으로 생산된 새로운 주관으로 이것을 제 3의 주체 혹은 제 3의 분석이라고 오가덴은 부르고 있다. 대조적으로 스톨로우는 유아와 양육자와 상호주관적인 세계에서 우리의 머리 속에 입력되어진 세상의 경험이 주관적인 경험으로 이 경험의 집합이 나의 경험의 세계로써 우리의 개인의 경험이 세상의 경험이고 세상의 경험이 내 개인의 경험이기 때문에 서로 쌍방적이고 상호관계에서 분리 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Ogden, 2005).

고로 자아의 죽음, 자아의 소멸, 자아의 해체를 느끼는 사람들은 유아기 시절부터 양육자 그리고 그 이후에 관계를 했던 사람들과의 쌍방 관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수용되어지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들의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양육자 혹은 관계자들에게 부응하고 복종해서 정작 자신의 자아가 없는 사람들로 보게 된다. 고로 자아의 경험의 죽음은 세상의 경험의 죽음으로 느껴지게 된다. 자아의 소멸 직전에 가버린 사람들은 이미 그가 살아온 세상의 경험들이 서로 연결이 끊어지고 응집력이 약화되어 산산조각이 난 것으로 자아 심리학자인 코호트(Kohut)가 자아 심리학에서 강조한 부분을 중요시 하고 있다. 세상의 경험들이 그 개인의 내면 세계의 경험들로써 잘 통합이 되고 잘 규제되고 잘 컨트롤 되면 자아 응집력이 강하고 그 결과 자신감이 높아지고 ego의 힘이 강하게 되는데 반대로 심리적 상처들이 고통을 유발하기 때문에 관계들을 끊어버리게 되면서 서로 연결들이 끊어져서 해리 상황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자아 해체를 경험하고 있는 자아가 죽어가는 사람들이 극심한 단계로 이어져서 자아가 죽어버린 사람들이 정신분열증 혹은 자폐증 환자들이라고 본다(Stolorow, Atwood & Orange, 1993, 2002).

자아의 소멸은 세상의 소멸이 되어버린다. 고로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이상한 돌 아이라고 비웃고 조롱하고 멸시하고 천대한다고 생각이 되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자신이 보고 있는 그 세상은 이미 소멸로 가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자신이 세상을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교묘한 자아는 자아 스스로가 자신은 이상이 없고 세상이 이상하게 변해버렸다고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아의 분열은 자신의 마음 속에 경험된 세계의 분열이고 소멸이다. 고로 그 경험들이 산산조각이 나서 서로 연결이 끊어져 있기 때문에 각각의 경험들이 뒤죽박죽으로 규제를 상실하고 제 마음대로 날뛰게 되면서 그 사람의 머리 속은 혼란해지고 생각들이 수 백배가 되어서 휴식을 취할 수가 없고 이 경험 저 경험에 끌려 다니는 처량한 소멸되고 죽어가는 자아가 되어버린 것이 쉽게 이해가 되어질 것이다. 프로이트는 일찍이 심리적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신체적 고통으로 바꾸어버린 사람들이 전환증이라는 신경증 환자들로 보았다, 다시 말해서 자아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고통들을 신체적인 고통으로 바꾸어버려서 신체적인 증세들로 마음의 에너지가 집중되어진 것이 오늘날 심인성 질환이 아닌가? 대표적인 심인성 질환으로 루마치스 관절염, 신경성 두통, 기관지 천식, 과민성 대장염, 위와 십이지장 궤양, 습진 피부염 그리고 최근에 등장하게 된 알레르기 반응 들 즉 아토피 피부염, 비염 등이 그들이다.

상호주관적 정신분석으로는 다음과 같은 증세들을 과거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쉽게 이해되어질 수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환청과 환각들이 이와 같은 관점에서 분석되어지고 치료되어지는 길을 열어 놓게 된 것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CIA, FBI의 요원들이 자신을 미행하고 감시를 당하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는 환자들은 상호주관적인 정신분석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양육자로부터 감시와 감독으로 자유로운 자치심을 박탈당한 사람으로써 그들은 자아의 완전 소멸을 방어하기 위해서 ego가 편리하게 만들어낸 방어로 본다. 부모님 혹은 가족 구성원들(형님, 누나들)이 자신을 박탈하고 박해했다는 것보다 CIA, FBI 요원들이 자신을 미행하고 감시를 하고 자유를 박탈하고 자신의 노예로 만들었다고 말을 해야 살아남을 수가 있지 않는가! Ego의 무의식적인 교묘함을 보라! 얼마나 인간의 무의식이 교모한지!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나 예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성모 마리아라고 주장하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망상들은 신의 힘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즉 신의 말들은 누구든지 존경하고 존중하고 따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로써 자신의 주장과 의견과 자신의 주체가 다른 사람들 한데서도 신의 명령, 가르침처럼 절대적으로 수용되어지고 인정되어졌으면 하는 그 사람의 소망을 반대로 상징적으로 표현을 한 것으로 본다. 평소에 그의 말과 행동은 누구에게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거부되고 무시되고 무가치하게 당한 모멸과 수치심과 무력감각이 만들어낸 자아의 보호막이 아닌가?

과대망상 환자들 즉 자신의 우수함과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인류를 위한 위대한 발명을 했다고 주장하는 망상증 환자들의 과대망상들은 자신의 재능을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써 그가 관계를 했던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생각과 느낌들과 아이디어들이 수용되고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소망들이 자아의 보호를 위해서 만들어낸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

어떤 배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고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에로틱 망상을 가진 환자들은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고 그가 좋아하는 러브 스토리를 실행하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상상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위와 같은 환자들을 상호주관의 정신분석에서는 다시 어린 시절의 발달 단계로 되돌아 가서 잘못된 상호관계를 바로 잡아서 그들의 자아가 다시 정상적으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바로 고치는 작업을 하는 것에서 정신분석의 치료가 시작되는 것이다.

 치료자는 위의 6명의 환자들을 보통 4(두 사람은 6개월과 8개월)에서 최고 10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그들의 상처가 발생한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그들의 상처들을 재연하고 수정하고 수리를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5명의 환자들은 성공적으로 자아를 회복해 나가고 있는 치료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상: 40대 초반의 대학 교수 A

증세: 우리나라의 최고의 명문 의과 대학병원 중에 하나로 손꼽히는 xxx 대학병원 신경 정신과 과장으로부터 약물 치료와 그 정신과 소속 심리치료사로부터 7년 동안 우울증으로 약물과 심리치료( 2년간의 목회 상담 심리치료)를 병행해서 받았으나 치료 결과에 불만족한 부인의 추천으로 치료자를 찾게 되었음

접촉: 인터넷에 치료자의 우울증 홈 페이지에 들어가서 치료 사례들을 읽어 본 부인의 추천으로 치료자를 찾아 오게 되었음

진단: 심한 우울증이라고 본인은 생각하고 있으나 조울증 관계 약물을 복용해 왔었고 약물 치료 효과에 불만족으로 최근에 약물을 끊었음, 대인공포증으로 재 진단됨

치료 기간: 6개월 간 치료 계약을 하고 1주일에 3회씩 (1회기에 1주일에 2시간으로 월, , 금 요일) 치료 회기로 심중적인 심리치료를 시작

치료 결과: 아래의 치료 과정은 A씨가 치료를 시작한지 제 2회 치료 회기(4 시간의 치료)에서 드러난 그의 7년 동안의 약물과 심리치료의 헛점을 분석하고 앞으로 치료자 한데서 받게 될 치료 계획과 치료에서 핵심 초점을 소개한 것이다. 4시간의 이 분석에 A씨는 전적으로 치료자의 분석에 동의를 표시하고 이제 희망이 보인다고 적극적인 치료 동기 의식을 보여 주었음

치료의 과정

 A씨는 반 바지 차림으로 소탈해 보이고 자신의 문제를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찍하게 털어 놓았다. 올해 9월부터 그는 연구년(안식년)으로 1년 동안 대학으로부터 휴가를 받아서 강의에 나가지 않게 되었고 오로지 그 자신의 문제에 몰두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했다. 현재 그는 휴식 기념으로 xxx 산 기슭에 텐터를 한 개 쳐 놓고 혼자서 그곳에서 지내는데 주말에는 사람들로 분주하지만 주중에서는 조용해서 좋다고 말을 하면서 지금의 문제는 너무나 "공허하고, 외롭고, 사는 것에 즐거움이 없다"고 말을 했다. 한마디로 살고 싶지 않는 심정이라고 했다. 그는 그의 부인과 이혼을 한 상태이고 이혼한 지는 3개월 정도 되었고 이제는 다시 재 결합을 할 생각이 들어서 부인이 친정 어머니 한데로 갈려고 하는 것을 아파트를 한 개 사줄 터이니 친정 어머니 한데로 가지 말라고 종용하고 있는데 정작 부인은 남편이 심리치료를 받아서 호전이 되면 그 때가서 다시 재 결합을 고려해 보겠다고 결정을 미루어 놓고 있다고 했다. 그는 7살된 딸이 한 명이 있고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로 딸을 관리하기가 어려워서 친정 어머니 한 대로 가려고 하는 것 같으며 만약에 부인이 딸을 데리고 친정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 다시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부인에게 아파트를 한 개 사주겠다고 해서 지금 붙잡아 놓은 상황이라고 그의 현재의 상황을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다.

A씨의 과거의 역사

 A씨는 치료자와 치료가 시작되면서 "선생님, 나는 심리치료 경험이 10년 정도 됩니다."라는 말에 치료자는 깜짝 놀랬다. 나는 그 말에 처음에 A씨가 심리치료사라고 생각 되었다. 심리치료사로써 자신을 치료 받으려고 온 것으로 알고 다시 심리치료 경험이 10년이라고 했는데 지금 심리치료를 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그 자신이 심리치료를 받은 경험이 10년이라고 다시 정정을 해서 말을 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서울 대학에 응시를 했으나 낙방하고 재수와 3수로 다시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xxx 대학에 들어가서 1년을 마치고 군대에서 복무를 끝내고 대학에 복학을 하기 전에 어학 연수로 미국의 동부 지역에 6개월간 연수를 갔다고 미국 유학을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 복학해서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L.A.에 사립 명문 대학 xxx 대학에 가서 석사, 박사를 7년 동안 끝내고 귀국에서 대기업에서 1 6개월 정도 근무를 하다가 xxx 대학에 전자 공학 교수로 채용되어 지금 현재 6년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가 7년의 안식년을 맞아서 지금은 학교 근무를 스스로 멈추고 산 기슭에 텐트를 치고 혼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 한국인 교회에 들어가서 교회 활동에 열심이었고 그곳에서 목사님 겸에 목회상담을 하시는 xxx 목사님에게 무료로 3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심리치료 덕분에 그는 그곳에서 석사, 박사 7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지 않았겠느냐?로 담담하게 말을 했다.

 한국에 귀국 후에 그는 대기업에서 근무 중에 현재의 부인을 소개로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되었고 결혼 식 날에 있었던 엄청난 에피소드를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는 부인을 만나서 3개월 정도 시간이 지나가면서 임신을 하게 되었고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다고 했다. 그 결혼에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반대를 했다. 유산을 시키고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라고 종용을 했다. 그러나 그는 독실한 기독교 인으로써 유산을 반대했다. 그 때가 임신 3개월 정도로 태아를 유산, 낙태를 시키는 것을 살인 행위라고 극구 반대했고 결혼을 강행을 할 것을 주장했다. 아버지는 완강했다. 그러나 결혼 식 날에 문제가 터졌다.

그의 가족 상황: 그는 그보다 6살 많은 형님이 한분 있었고 그리고 4살 많은 누나가 한명 있었다. 아버지는 A씨가 어린 시절부터 음주와 폭력으로 가족이 조용할 날이 없었다고 했다. 형님은 어린시절부터 반항아, 문제아로 학교에서 공부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하는 일에 모두 반대하는 불량 청소년이 되었고 고등학교를 겨우 야간으로 졸업을 하게 되었고 대학에는 가지 못했다고 했다. 누나 역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려운 생활을 하다가 지금은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다고 했다. 형님은 이후에 끝임없이 아버지와 충돌을 했고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어머니와 형님을 폭행을 했다. 그는 아버지의 귀여움과 사랑을 독점했고 아버지로부터 한번도 손찌검이나 폭력을 당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형님으로부터 초, , 고등학교 때까지 폭력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형님으로부터 얻어 맞아서 앞 이빨이 4개가 부러져서 아버지에 의해서 병원으로 옮겨지고 지금은 앞 이빨이 임플란트 이빨이라고 그의 이빨을 보여주었다. A씨는 공부에 전념했고 항상 공부를 잘 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랑을 독점한 탓에 형님으로부터 시기, 질투를 받아서 형님으로부터 폭행을 당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A씨가 어린 시절부터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고 결국은 두 사람은 A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혼을 하겠다고 서로 약속을 했고 정말로 A씨가 고등학교를 졸업 하는 날에 두 사람은 정식으로 이혼을 했다. 아버지는 지금 현재 1000억대의 부자로 혼자서 살고 있고 아버지는 자수 성가한 사람으로 부동산, 중고 자동차 판매, 동대문 시장에서 천막, 텐트, 등산 장비 등을 판매하는 사업을 하다가 돈을 벌어들인 사람으로 지금은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은 고리채 사업(A씨의 표현)를 하고 있으면 엄청난 돈을 모은 사람으로 돈을 모으는 일밖에 모르는 수전노, 노랭이(A씨의 표현)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모았지만 정작 돈을 쓸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아버지를 혹평했다. 아버지는 돈이 생기면서 외도를 하게 되었고 이것이 어머니와 갈등의 불씨가 되어 화가 난 어머니가 맞불 작전으로 어머니도 역시 바람을 피워서 아버지와 삼촌에게 모델 현장에서 어머니가 외간 남자로 간통을 하는 것을 적발해 내고 그 후 어머니는 위자료 한푼 받지 못하고 자기 발로 집에서 쫓게 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술술 거침없이 이어나갔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를 끝내고 귀국 후에 어머니와 둘이서 살 게 되었고 결혼의 날짜가 잡히고 결혼식이 다가오자 아버지의 반대 속에 형님이 그와 어머니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찾아와서 협박으로 결혼을 포기할 것을 위협을 하게되자 어머니가 A씨에게 아무래도 너의 신변이 위험하니 혼자 집을 옮기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는 혼자서 나와서 살 게 되었는데 정작 결혼 식 날에 사건이 터지게 된 것이었다.

첫 번째 에피소드: A씨는 결혼식날에 형님이 A씨의 친지들에게 전화로써 결혼 식이 취소되었다고 연락을 해서 결혼 식장에는 A씨의 가족은 어머니 한 사람 뿐이었다고 했다.그러나 문제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신랑과 신부가 주례 앞에서 서서 주례사를 듣고 있는데 난데없이 입구 쪽에서 A씨의 이름을 부르면서 "xxx 개 새끼야! 이 결혼 식은 무효야!" 하는 고함 소리가 들렸고 주례 쪽을 쳐바고고 서 있는 그에게 달려온 형님은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서 결혼 식장은 난장판이 되었 버렸다고 했다. 결혼 식장에 참석한 축하객들을 깜짝 놀라서 신랑인 A씨한데 버림받은 어느 여성이 자신을 버리고 비밀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알고 그 여성의 오빠가 결혼 식장에 와서 깽판을 놓는 것으로 알았다고 나중에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형님과 맞붙여서 형님을 죽이려고 달려 들었으나 신부측의 부모님의 만류로 다른 곳으로 피신을 하게 되었고 그 이후부터 아버지와 형님과 관계를 끊어 버리고 7년 동안에 한번도 전화나 접촉을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그 사건 이후에 인터넷에서 심리치료를 알아본 부인의 추천으로 우리나라의 명문 의과대학 대학병원에 정신과 과장이었던 xxx 박사님에게 약물 치료와 그 정신과의 부족 심리치료사인 xxx 박사의 심리치료를 1주일에 1시간씩 최근까지 7년간을 받아 왔었으나 얼마 전에 그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다고 했다.

두 번째 에피소드: A씨는 부인과 7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불만족을 이야기를 하면서 부인과의 이혼을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결혼 7년 동안에 두 사람의 관계는 대단히 좋았다고 했다. 그들은 결혼 초반기에는 주말이되면 두 사람이 가까운 해외 즉 홍콩, 필립핀, 중국, 싱가폴, 태국 등으로 여행을 자주 다녔고 우리나라의 이름난 곳은 자주 주말 여행으로 가보지 않는 곳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진작 부인은 섹스 시에 섹스를 거부해서 A씨는 괴로웠다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7년 동안 부부 생활이 유지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부인은 술을 마시면 섹스 문제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자주 술을 마시게 되면서 최근에 부인은 1주일에 4-5일을 하루에 소주 1병씩을 마시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장인 어른은 술 때문에 암으로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부인이 술을 마시지 않으면 섹스 시에 통증으로 섹스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치료를 받아보지 않았으냐?는 질문에 그는 그가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xxx 심리치료 사에게 부인이 3번을 방문하고는 심리치료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섹스 문제 이외에서 부인은 A씨를 모욕하고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동으로 A씨가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한번은 A씨가 TV를 보면서 땅콩을 먹고 있는데 부인이 다가 와서 그가 먹는 땅콩을 쓰레기 통에 집어 쳐 넣어 버리는 일이 있었고 이러한 사건들이 한번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여러 차례 있었다고 했다. 남편을 무시하고 모욕을 주는 행동에 참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지난 1월 달에 부인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가 xxx 연극 공연을 보고 싶으니 그 연극을 보고 오겠다고 허락을 받아서 연극을 보고나서 6시 경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 부인이 A씨에게 아무 말도 없이 짐을 싸는 것을 보고 "무슨 이유로 짐을 싸느냐?"고 물어보아도 아무 말이 없는 것에 분노해서 그가 노발대발로 차라리 내가 집을 나가겠다고 짐을 싸서 집을 나오고 말았다고 했다. 그 이후에 지금까지 그는 다시 집에 들어가지 않았고 그것이 이혼으로 연결되었다고 했다. 그 이후에 부인에게 왜 그날 집을 나가려고 했느냐?라고 물어 보았을 때 부인은 대답이 걸짝이었다. "그냥 한번 땡깡!(난폭하게 성질을 부리는 것을 표현한 말)을 부려본 것이었다!"라고 하는 대답을 들었다고 어이가 없어 했다.

 그 이후에 그는 두 가지의 이유로 부인에게 이혼을 요구를 했다. 첫 번째는 섹스의 거부였고 두 번째는 남편을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는 부인의 태도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더 붙여서 이 두 개의 요소들은 법정에서 이혼의 요소로 충분 조건이 된다고 강조를 했다. 부인은 이혼에 반대를 했다. 그러나 그는 부인이 반대하면 법정으로 소송으로 가겠다고 맞섰다. 결국 부인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A씨는 지난 1월 달에 그 사건 이후에 지금까지 혼자서 원 룸에서 혼자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혼 이후에 연구년(안식년)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지 않고 휴식을 하면서 공허감, 외로움이 몰려오게 되자 다시 부인과 결합을 생각하고 있으나 이번에는 부인이 반대로 부인은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페이지를 접한 후에 A씨에게 치료자를 만나서 심리치료를 받을 것을 제의를 했고 만약에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아서 A씨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게 되면 그 때 가서 재 결합을 고려하겠다고 조건을 붙였던 것이고 A씨는 치료자를 찾아 오게 되었다고 지금까지의 그의 이야기들을 일사천리로 이야기를 술술 해 나갔다.

세 번째 에피소드: 그는 결혼 전 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이후에 어머니가 암 수술로 병원에 가게 되면서 그에게는 한 마디로 없이 이혼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아버지가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을 시킨 점에 분노했다. 아버지와 이혼을 한 상태에서 왜 그에게 한마디도 상의 없이 아버지 한데 도움을 요청했느냐? 라고 이후에 어머니에게 물어 보았을 때 어머니는 A씨가 돈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는 말을 듣고 이 이후에 어머니와 관계도 완전이 단절하고 말았다고 했다. 그 당시에 그는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을 시키고 보살펴줄 충분한 돈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를 무시하고 그렇게 원수처럼 사이가 나쁜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에 모욕감을 느낀 것 같았다.

최근의 상황: 그는 지금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형님과 7년동안 관계를 단절하고 전화 한 통화도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현재는 부인과 이혼으로 7살된 딸과 부인을 잃어 버렸다. 그가 지금 하소연하고 있는 문제는 "공허함", "허무함", "외로움", "삶에 의미를 느끼지 못함" 그리고 "왜 살아야 하는지?" "삶의 의미를 잃어 버림" 이라고 그 자신의 지금 현재의 문제를 표현을 했다. 치료자는 그에게 그가 7년 동안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으로 받았는데 병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는 우울증은 분명한데 그 신경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그에게 조울증으로 다시 중간에 변경을 해서 조울증 약물인 "리디움"(Lidium)을 최근까지 복용하다가 지금은 효과가 없는 것 같아서 그 신경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찾아 가서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를 중단 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치료를 그만 두었다고 했다. 그는 부인이 처음에 추천한 xxx 대학 병원 신경 정신과와 심리치료사에게 7년동안 치료를 받아 왔으나 그 치료사 선생님들과 무엇인지 모르게 서로 핀트가 맞지 않은 것 같으니 이번에는 치료자 한데 가서 심리치료를 받아 보든 것이 좋겠다는 부인의 추천에 그가 치료자를 찾아오게 된 것이라고 지금까지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했다.

7년 동안 정신과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를 병행하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치료자는 A씨에게 7년 동안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를 하면서 어떤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이 드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는 뚜렷하게 얻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도움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긍정적인 생각에는 치료자도 동의를 했다. 치료자는 더 붙여서 물어 보았다. 그런데 지금의 A씨의 상황은 아버지, 어머니, 형님과 관계가 단절되었고 결국 부인과 7살된 딸과의 관계 단절로 나타난 것을 지적을 하면서 분명히 약물 치료는 제외한다고 해도 7년 동안의 심리치료는 무엇인가? 핀트가 맞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하자 A씨는 그제서야 분노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래서 그 전문가 선생님에게 찾아가서 마지막으로 치료에 효과가 없는 것으니 그만 두겠다고 이야기를 했다고 지적을 했다. 그 심리치료사 한데서 치료 비용을 얼마나 지불했으며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그는 시간 당 6만원으로 심리 역동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정신분석 치료로써 그냥 자신의 생각들과 현재의 고통들을 이야기로 표현을 해 온 것으로 A씨는 그것이 심리치료의 전부 인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 그의 상황을 보면 한가지도 문제가 해결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해소되어 삶에서 즐거움과 자신감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현재의 문제가 "공허함, 외로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림"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것은 우울증의 특징임을 알 수 있었다. 한가지 눈에 띄는 효과는 A씨가 "자신의 문제점을 술술 숨김없이 털어 놓는 것"이었다. 치료자가 그것을 지적을 했을 때 그는 처음에 심리상담 선생님에게 갔을 때는 제대로 자신을 표현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자신의 현재의 느낌들과 자신의 문제점을 솔찍하게 털어 놓는 것은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의 해결은 한가지도 해결된 것이 없고 오히려 관계가 모두 단절 되어서 고립무원의 상태가 된 것이었다. 치료자는 그에게 그 심리치료사 선생님께서 어떤 치료 목표로써 치료를 하고 있었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은 심리치료사 선생님은 목회 상담사로써 기독교에 바탕을 둔 심리치료였고 그리고 그는 그 치료사 선생님이 시키는 데로 한 것 뿐이고 무엇을 해결하려는 목표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그녀 심리치료는그렇게 하는 것인줄 알고 그냥 치료를 받았던 것이라고 했다.

A씨의 문제점 분석과 앞으로 치료에서 초점을 맞출 치료 계획

 치료자는 A씨에게 치료자의 치료 방식을 정신분석적인 심리치료로써 정통 정신분석에서 문제 해결 쪽으로 초점을 맞춘 치료임을 강조를 했다. A씨는 신체적으로는 나이에 알맞제 성숙, 성장을 했으나 그리고 지식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공부, 학문적으로 성장, 발달을 해서 그 부분에서는 뛰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는 말로써 자신을 표현하는 부분,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는 부분,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부분, 갈등이 생기면 끊어 버리고 단절로 나는 부분들이 유아기 상태로 머물러 있어니 이 부분에 성장이 중지된 자아의 결함들을 수리하고 수정하고 성장을 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를 했다. 단 그렇게하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을 예고를 했다. 그는 그것들이 해결되어질 수 있을찌?에 대해서 의문을 표현을 했다. 치료자는 A씨에게 조금 전에 지적한 부분들은 부모님과의 양육의 과정에서 결함이 생긴 부분으로 A씨는 부모님의 결함적인 양육 때문에 살아 남기 위해서 부모님의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살아 남을 수는 있어지만 그가 자아 소멸을 막기 위해서 방어를 사용한 것(복종, 부응, 착한 아들) 때문에 성인이 된 지금은 아버지, 형님, 어머니에게 한번도 자신의 내면의 고통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A씨도 시인을 했다. 치료자가 왜 형님이 결혼 식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그 심리치료사 선생님과 그 문제를 분석한 것을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의 복심을 읽은 형님이 아버지의 분노를 대신해서 그에게 복수로 화풀이를 한 것임을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분명했다. 그는 형님은 37세까지 아버지가 결혼을 하라고하는 것에 반대해서 만약에 아버지가 동대문 시장에 등산 장비 점포를 자신에게 넘겨주면 결혼을 하겠다고 졸라서 그가 그 점포를 인수하고 결혼을 했고 1000억대의 돈을 가진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그가 유산을 물러 받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A씨가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A씨에게 그런 행동을 한 형님과 아버지에게 A씨 자신의 분노, 억울함, 모욕과 수치심을 직접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가?를 물어 보았을 때 그는 한번도 아버지, 형님, 어머니에게 자신의 내면의 고통,분노, 적대 감정을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만약에 그가 지금도 형님,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칼로 그들을 찔러 죽일 것 같아서 직면을 하기를 피했왔다고 했다. 치료자는 A 자신의 내면에 쌓여 있는 분노, 적대 감정, 노여움를 보라고 지적을 했다. 당장 내일 찾아가서 자신의 마음을 말로써 보여주라는 것이 아니고 우선 A씨의 내면에 있는 분노, 적대감정, 미움을 끄집어 내서 풀어 내고 감정이 어느 정도 빠져 나가면 자신의 분노를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부모님, 형님 앞에 나가서 자신의 마음을 말로써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아버지, 형님, 어머니의 문제들을 직면해서 뚫고 나가서 갈등을 해결하고 그들과 관계를 바로 잡는 것이 치료의 핵심임을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A씨는 그가 xxx 지금 현재의 직장에서 근무를 할 때 아버지와 유사한 직장 상사에게 분노해서 참다가 참다가 마침내 폭발을 해서 걸상을 들고 그 직장 상사를 내리 찍으려고 했던 경험을 이야기를 했다. 그 시점에서 그 원로 교수님이 걸상을 들고 그를 만류해서 조용하게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그 대학에 머물고 있게 되었을지만 만약에 그 교수를 걸상으로 찍었다면 그는 해고되어 지금쯤은 그 대학에 근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치료자는 A씨에게 부인과 사소한 갈등이 결국은 집을 나와서 이혼으로 연결된 것을 지적을 했다.그러자 A씨는 부인이 자신에게 1년 중에 10개월은 무난한데 당신은 2개월 정도가 폭발적인 분노를 감당할 수 없었다고 털어 놓았다고 했다.

 그는 반신반의로 형님과 아버지에게 그러한 것이 가능할 것인가? 그는 아버지를 냉혈 동물, 피도 눈물로 없는 파렴치한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 노랭이로 그리고 형님에 대해서는 "인간"이라는 말을 붙이기를 거부하는 쓰레기로 표현을 했다. 치료자는 그가 아버지와 형님에 대한 분노, 미움, 적대 감정을 지적을 했다. 그는 그것을 인정을 하면서도 그는 그러한 인간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고 그들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만 분통이 터지고 대화가 되지 않고 바뀔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소 귀에 경 읽기"가 아닙니까? 하고 반문을 했다. 여기에서 치료자는 아버지, 형님, 어머니 앞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을 하는 것을 아버지, 형님을 바꾸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A씨 자신의 자아를 위해서 하는 것임을 지적을 했다. 그러한 이유로 피해 온 결과는 A씨는 다른 사람과 의사 소통을  즉 자신의 분노, 미움, 적대 감정 즉 A씨 자신의 내면 감정들을 말로써 표현을 하지 못하고 행동으로 표현을 해서 관계가 단절로 이어진 것을 지적을 했다.그것은 부인과의 7년간의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임을 지적을 했다. 갈등을 피해서 결국은 관계 단절로 지금 A씨 자신의 처지가 고립 무원이 된 것을 지적을 했다. 부모님 앞에서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도 자기 주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그는 쓰레기 같은 형님을 어떻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다. 치료자는 인간은 100% 완벽한 사람도 없고 100% 나쁜 악인도 없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단지 단점이 장점을 압도해서 단점이 좌지우지하는 사람이지만 그들로 내면에 보면 약간의 좋은 점은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A씨는 형님은 아버지의 등산장비 점포를 인수를 해서 지금은 그는 잘 살고 있다고했다. 치료자는 그러한 사람들의 단점을 가진 자아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장점의 자아와 대화를 하는 것이라고 일러 주었다. 그러한 것은 형님, 아버지,어머니와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 마음이 어떻게 즉 내 자아가 어떻게 작동을 하는가?를 배운 후에 그러한 사람들의 자아와 대화를 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 치료의 일 부분임을 지적을 했다.

 더 붙여서 치료자는 인간의 내면 마음 즉 자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자아는 우리가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얻은 경험들의 총합이 자아임을 강조했다. 이자아는 유아기 자아, 학동기 자아, 사춘기 자아, 성인기 자아, 노년기 자아 등으로 집합으로나눌 수 있고 그 자아는 나이에 따라서 성장, 발달, 성숙해 나가는 것으로 신체적 발달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서 성숙해 나지만 정신적 자아는 성장이 멈추거나 발달이 지연되거나 발달에 결함이 생길 수 있고 A씨의 경우에는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자기 주장, 대인관계 갈등,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고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자아에 결함으로 이 자아가 유아기에서 성장이 멈추었기 때문에 다시 그 자아로 되돌아 가서 그것을 수정하고 다시 발달을 시키는 것이 치료자가 하는 심리치료의 과정임을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이러한 치료자의 지적에 대해서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지? 다시 재차 물었다. 치료자는 그것은 단 시일에 가능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끝없는 훈련이 필요하고 치료의 과정에서 과거의 상처들과 부모님과의 양육의과정이 치료에서 재연되어지고 그것을 다시 잘못된 것을 수정해서 바로 고치는 작업이 치료의 과정으로 고로 심리치료는 적어도 6개월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를 했다.

 앞으로 치료는 부인과 갈등 관계, 아버지, 형님 그리고 어머니와 갈등들을 풀고 관계를 다시 연결해서 복원을 하고 A씨 자신의 내면에 쌓이 분노, 적대감정, 미움 등을 토해내고 마음을 수리를 하는데 있다는 것을 강조를 했다. 심리치료의 목적은 우리의 내면 마음 속에 있는 상처를 딲아내고 씻어내고 수리를 해서 끊어진 관계들을 복원하고 다시 원위치로 되돌리는 작업이고 여기에서 다시 내 경험의 폭을 넓히고 관계를 확대해서 삶의 경험들을 넓게 만들어가는 삶의 과정임을 지적을 하자 A씨의 반신반의하는 의문이 A 씨의 만족스런 표정으로 바뀌면서 그가 치료자의 치료 방식이 마음에 흠족하게 마음에 와 닿아서 앞으로 희망이 보이고 자신감이 생긴다고 만족해하면서 다음 치료 회기 시간이 기다려진다는 표현으로 치료실을 나갔다.

A씨는 그 다음 주일부터 1주일에 5(, , , , ) 2시간씩 1주일에 10시간씩 집중적인 심리치료를 요구를 했다. 그 다음 제 5 (치료 10 시간)에서 A씨의 대인관계 패턴이 분석되어졌다. A씨의 대인관계 패턴을 상세하게 알고 싶은 분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시오. http://www.depressed119.pe.kr/images/newfile60_html_smartbutton3.gif 

http://blog.naver.com/psychclinic/220992186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