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의 본명은 김정식이고 32살에 자살한 서정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1924년에 나온 그의 대표작인 "진달래 꽃"은 교과서에 실리고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인터넷: 브리테니카 백과 사전, 2014, 7, 21). 그의 "진달래 꽃" 이라는 시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의 진달래 꽃이라는 시를 인용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녀노소(男女老少) 할 것 없이 즐겨 읊고 있는 김소월의 시 진달래 꽃은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을 노래한 시로 유명하다. 시인 박시교(1986)는 소월(素月) 만큼 인구에 회자되는 시인은 일찍이 없을 것이다. 한국 사람이면 소월의 시 한 편쯤은 외어야 하고 진달래 꽃, 산유화, 먼 후일 엄마야 누나야 초혼 등의 작품들—”에서 소월 시를 민요적 율조를 담은 민중시로 평가하고 있다(글방 문고, 작품 해설, 1986)(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은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글방 문고, 011호, 진달래 꽃에서 인용)

 

 위의 시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왔고 알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보기 싫어서 떠날 때에는 고이 보내 드리겠다, 진달래 꽃을 따가 뿌려드리겠다,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미를 거꾸로 역설적으로 해석을 해서 실제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 드리고 싶지 않다"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해석을 하고 있다는 증거로써 문학 평론가인 이어령은

 소월의 진달래 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 이 시는 이별가로 가르쳐 왔다. 그러나 이 시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의 시제는 모두 미래형이다. 화자는 가정적 체험을 통해 이별의 슬픔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고한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이다. 이처럼 시의 이중적이고 아이러닉한 의미를 파악하게 되면 사물의 의미나 느낌을 흑백으로 재단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시의 공화국에서 흑백 사이의 회색은 기회주의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삶의 체험을 깊게 하는 이상향이다. 반대의 일치, 아이러니 시적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소월의 시 읽기는 흑백논리의 가시철망을 끊고 무한한 상상의 벌판으로 나가도록 하는 강철 가위였다. 소월의 시에서 보여주는 반대의 일치, 즉 극한의 부정을 통해 긍정을 이끌어내는 역설을 소크라테스가 마신 독약의 이름에 빗대 햄록효과로 부르고자 한다, ---이하 중략(이어령의 은퇴 강연, 중앙일보 2001년 9월 8일)

 라고 해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지고지순(至高至純)(1. 더할 나위 없이 높고 순결하다, 2.더할 나위 없기 높고 순수함: 어학사전, 2014, 7,21)한 사랑을 노래한 것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라는 점에서 필자는 반대한다. 그 이유로써 김소월의 시는 직설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유독 진달래 꽃이라는 시에서 거꾸로 역설적으로 시를 써서 의미를 거꾸로 된 반대로 해석한다는 것에 대해서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자 한다.

 그 이유는 김소월의 시를 보면 1960대에 정신분석 학자인 건츄립(Guntrip)의 참 사랑의 의미를 해석한 "친밀감에서 나를 잃지 않고 자치심, 독립심에서 너를 잃지 않는 사랑"의 의미와 일치 한다는 점이다. 즉 김소월의 시를 직설적으로 해석하면 그 해석이 참 사랑의 의미와 일치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사랑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들을 한번 살표 보고자 한다. 필자가 31년 동안 연구한 것을 바탕으로 학자들은 사랑을 어떻게 설명을 하고 있는가?를 한번 살펴 보고자 한다.

 사랑은 D(deficit) 사랑과 B(be·nev·o·lent)사랑으로 나누는 학자들도 있다. D 사랑이라는 것은 결함적인 사랑, 나쁜 사랑을 의미하고 B 사랑이하는 것은 은혜로운 사랑, 좋은 사랑의 영어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Stevens-Long & Cobb, 1983).

 D 사랑이라는 것은 소유적인 사랑이다. 상대를 내 소유물로 착각을 하게 되면 사랑은 그 대상을 질식시킨다. 그 대상은 내 소유물이 되고 나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이미 앞 장에서 설명을 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내 물건으로 사랑을 착각하게 되면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그 소유자의 개인적인 물건이 되어 버리게 된다. 나 이외의 어떤 사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질 수 없다, 내 물건은 나만이 소유할 수 있고 그 누구도 나 이외에는 소유할 수 없다는 생각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오는지 그 예를 한 가기 소개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서 필자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무렵에 한 우리나라의 신문에 다음과 같은 사건의 기사가 난 것을 보았다. 1980년대에 xx 시에서 미스 진으로 선발된 U양이 그녀의 연인이었던 K군으로부터 살해를 당한 것이었다. 살해의 이유는 U양이 지방의 도시인 xx 시에서 미스 진으로 당선되어 전국 대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그의 연인이었던 xx 대학의 K군을 U양이 더 이상 그를 만나주지 않게 되자 앙심을 품고 U양을 어떤 회사에게 미스 진에 당선된 U양에게 줄 선물이 있다고 속여서 U양을 불러 내어서 xxx 해변가에서 서로 말다툼을 하다가 물에 빠뜨려 살인을 한 것이었다.

 K군과 U양은 서로 연인 사이었으나 미스 진에 당선 된 U양이 더 이상 연인 관계의 결별을 선언하고 만나주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에서 나온 복수심으로 U양을 살해한 것이었다는 신문의 뉴스는 K군이 U양을 사랑하게 되면서 K군 자신의 소유물로써 착각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K군은 U양을 사랑하기 때문에 K군을 제외한 다른 어떤 누구도 U양을 가질 수가 없다는 착각으로 U양을 살인을 해서 결국은 무의식적으로는 U양을 영구적인 K군의 소유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위의 예 이외에서 뿐만 아니고 살인 사건 중에서 가장 많은 원한 관계의 살인 사건들은 치정관계의 살인 사건으로 보고 있다. 또 한 부부 사이거나 혹은 연인 사이었던 사람들이 서로 헤어지게 되면 끝까지 따라가서 헤코지를 하는 것들을 수 없이 많이 보아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소유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나온 결과가 아닌가!

 진실된 사랑 즉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이라는 말은 최고의 사랑, 높고 순결한 사랑으로 누구나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내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내(A라고 가칭) 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욱 더 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해줄 수 있는 B라는 사람에게로 가고 싶어 한다면 그리고 나인 A보다 내 사랑하는 사람이 B 한데서 더욱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확신한다면 B에게로 보내주는 것이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내가 내 사랑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 보다 내 사랑하는 사람이 B 한데서 더욱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면 기꺼이 나는 즐겁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드리겠다고 노래를 한 것이 바로 김소월의 진달래 꽃의 의미가 아닌가!

 위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김소월의 시를 한번더 들여다 보자. 필자는 이미 김소월의 시를 10년 전에 재 해석으로 필자가 쓴 "나"(정신분석학적으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에서 다음같이 기술을 했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표현에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김소월의 시는 역설적인 기법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직설적으로 그대로 해석을 하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해석이 된다.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사람은 언제든지 기꺼이 편안하게 보내드리겠다. 나보다도 다른 사람한데서 더 행복해진다면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기꺼이 양보하겠다는 생각이야 말로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닌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다고 해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오히려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사랑이야말로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감수할 용의가 있다는 의미가 아닌가? 사랑은 구속과 속박이 아니고 자유로움과 편안함에서 시작되는 즐거움 이다는 것이 이 시에 베어 있다고 하겠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싫어할 때는 언제든지 자유롭게 보내 줄 수 있다는 마음이 잘 나타나 있는 시다(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진실된 사랑 즉 참 사랑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해석이 나온 것이 1960년대로 사랑에 대한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김소월이 이 시를 쓴 시기가 1920년대로써 이미 사랑의 핵심을 꿰뚫어 본 것이 40년이나 앞선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934년에 자살한(박시교, 1986, 글방 문고. 작품해설) 천재 시인은 이미 사랑의 본질을 알고 있었고 우리가 지금까지 역설적으로 해석한 시점에서 본다면 80년을 앞서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소월의 시는 역설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랑, 참사랑의 의미로 해석되어져야 한다.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면 쉽게 풀린다(김종만, 결혼과 가족과 치료, p90-p97, 2003). 더욱 더 상세한 것은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