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Couch)에 누워서 정신분석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

 

  조현병(정신분열증)을 정신분석적으로 치료할 수 있나요?

  

 치료자는 조현병(정신분열증)을 가진 젊은이들로부터 자주 조현병도 정신분석으로 치료가 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러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치료자는 모든 정신장애는 치료를 받고자 하는 사람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라는 말로써 원론적인 대답을 해준다. 본인 자신이 스스로 고치겠다는 강한 의지만 있다면 정신적인 문제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를 해준다.

사실 조현병인 정신분열증은 정신장애들 가운데서 가장 고약한 병으로 치료가 가장 어려운 장애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최근에 1943년에 존 홉킨즈 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레오 캐너(Leo Kanner)에 의해서 11명의 특이한 행동을 보이는 어린이들에 대한 논문이 학계에 등장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자폐증(autism) 0 -5세 사이에 등장하는 장애로써 치료가 더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조현병은 사춘기에 등장하는 병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발병의 범위가 넓어져서 10– 45 세까지 광범위하게 분포되는 정신장애로 정신건강 전문가들에게 인식이 되어지고 있다(Stone, 1983).

조현병은 산업 사회의 부산물로써 고대, 중세, 근대에는 없었던 병이었다. 조현병은 “20세기가 낳은 현대 병()이다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부터 조현병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약물치료가 아닌 정신분석 치료의 등장과 미국과 영국에서 조현병의 치료의 역사적 과정과 치료자가 조현병에 대한 연구의 과정을 소개하면서 치료자가 성공적으로 약물치료가 아닌 순수한 정신분석 치료로써 성공한 사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조현병의 등장

 조현병이 의학계에 등장을 한 것은 1899년에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크레펠린(Kraepelin)에 의해서 조발성 치매(dementia praecox)라는 이름으로 조증적 우울증(심한 우울증과 조울증)으로부터 분리되어 젊은이들이 치매에 걸리는 병으로 의학계에 처음으로 등장을 했다. 그 후에 사춘기 정신 질병으로 인식되어져 왔다. 그러나 조현병 즉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이 의학계에서 등장해서 지금까지 사용되어지게 된 역사적 배경을 알아야 이해가 충분히 될 것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대학 정신병원이라는 이름의 정신병원이 등장한 것은 스위스의 쥬리히에서 1860년대에 세워진 부르고졸리(Burgholzli) 대학정신 병원으로 정신의학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독일의 내과 의사였던 윌헬름 그리싱거(Wilhelm Griesigner)가 어린이들의 정신 질병에 대한 연구로 시작해서 드디어 1940년대에 처음으로 의과대학 정신과 교과서를 썼고 이후에 1860년대에 수정 편집된 교과서에서 모든 정신적인 장애의 근원이 뇌로 지적함으로써 이후에 독일에서 뇌의 조직적인 신경학 발달에 단초를 제공한 사람이다.

그가 쥬리히의 부르고졸리에 세운 대학 정신병원이 정신의학의 연구에 메카로 시작되었고 여기에 3대 총장인 오그스테 포엘(Auguste Forel)에 의해서 독일의 헤몰츠 학파들의 뇌의 조직적 신경학과 프랑스의 최면학의 역동적 정신의학의 통합으로 정신의학의 선두 주자로 이끌었고 그의 후임으로 4대 총장으로 1898년에 부임한 사람이 바로 유진 블루어(Eugen Bleuler)이다. 그가 30년 동안 그 병원에 머물면서 그 병원을 정신병원의 세계적인 모델로 그리고 정신병 치료의 표준 모델을 제공한 사람이다(Ellenberger, 1970).

유진 블루러는 부르고 졸리 대학정신 병원을 세계에서 최고의 정신병원으로 조직과 운영에 체계적은 방법과 치료의 과정에 획기적인 방법을 동원한 현대적 정신병원의 기초를 설립한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 받고 있다. 그가 아침 8시에 그의 제자들을 이끌고 병원에 입원한 불치병으로 알려진 조발성 치매 환자들을 순회하면서 진료를 시작했고 그리고 저녁 8시 이후에는 그날 치료한 치료 사례들을 체크하고 정리해서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면서 12시까지 개인적 정신의학의 연구 논문들을 연구를 하도록 해서 정신과 의사들에게는 혹독한 훈련의 과정을 도입한 인물로써 그는 정신의학에 치료의 체계를 처음으로 시도한 인물로써도 유명하다.

그의 지도 밑에서 훈련을 받은 인물들이 구스타브 융(Gustavo Jung), 칼 아브라함(Karl Abraham), 루드위그 번스윙그(Ludwig Binswanger), 유진 민코워스키(Eugene Minkowski), 허만 로샬(Hermann Rorschack), 아돌프 메이어(Adolf Meyer) 그리고 아브라함 브릴(Abraham Brill)등이 있다. 그들은 모두가 정신분석학에서 자주 이름이 거론되는 역동적 정신의학계의 선두주자로 활동한 대가들이다.

1900년에 스위스의 바셀(Basel) 의과대학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한 융(Jung)이 레지던트로 근무 하기 위해서 부르고졸리 대학 정신병원에 도착을 했을 때 유진 블루러가 대학 병원의 입구에서 융을 맞이해서 융이 들고 온 가방을 들어주면서 안내를 했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는 겸손하고 학구적이고 이론적으로 박식했다. 이후에 융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소개를 했고 유진 블루러가 그것을 도입을 해서 스텝들에게 단시일 내에 마스트를 하도록 열풍을 일으킨 것은 전설로 남아 있다(Ellenberger, 1970, 역동적 정신의학의 역사 에서 인용). 그는 정신분석 학회에 가입을 하지 않았지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수용하고 응용을 했고 그리고 프로이트를 노벨상 후보로 추천한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도그마적이라고 비판하고 학문에서 도그마적인 교리가 위험하다고 정신분석학에 대한 일침을 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Wikipedia, 1017, 7, 15).

유진 블루러가 그 동안 20년 동안 연구의 결실이 1911년에 정신분열증 환자에 대한 그룹이라는 저서를 출판함으로써 조발성 치매 라는 이름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정신분열증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게 되었다.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는 schizophrenia라는 이름으로 schizo라는 이름은 분열이라는 그리스어와 phren이라는 정신이라는 그리스어에서 i illness라는 병의 이름이 조합이 되어서 schizophrenia라는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되었다(Stone et al, 1983).

블루러는 정신분열증이 단일한 정신병이 아니고 다양한 종류의 정신분열증이 있다는 것으로 처음으로 기술을 했다. 사춘기 형 정신분열증(하베(hebephrenic) 스타일 - 제우스의 부인 헤라(Hera)의 사춘기 딸의 병으로 명명), 균열성 정신분열증(어떤 특정 자세를 계속하는 긴장성 분열증(catatonic), 편집증 정신분열증, 혼합형, 급성 정신분열증 등으로 분류를 했다. 그의 4 A(영어의 첫 글자인 A) 간이 진단은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즉 연상의 분열(association), 감정과 사고의 분열(affective), 양면 감정(사랑과 미움, 너와 나)의 분열(ambivalence), 자폐적(autistic) 세계로 철수가 기본 특징이라는 점과 그리고 이 병이 유전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던 그 당시에 제 2차 과정으로 환경적 영향력의 과속화의 강조와 이 병이 치료 되어질 수 없다는 개념을 깨고 치료되어질 수 있다는 것과 그리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의 개념을 도입해서 환청과 환각의 근원을 추적해서 찾아낼 수 있다는 등의 정신분열증 치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소개했다.

특별히 그는 정신분열증의 치료에서 60%는 치료되어질 수 있고 그리고 22% 정도는 평생 동안 정신병원에서 살아야 하고 그리고 18% 는 병원을 들락거릴 것이라는 그의 예측은 윙(Wing, 1966) 1966년에 30년 동안 40명의 여성 환자를 추적 연구한 결과 67%가 회복, 7%가 정신병원에서 보냈고, 25%는 병원과 집을 왔다 갔다 했다고 보고를 한 것과 비교하면 거의 일치됨을 보이는 것은 놀랄 만 하다.

조현병 환자들의 공통된 특징

 조현병 환자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문제를 부인하는 것이 특징이다. 정신장애들 중에서 가장 고약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장애를 부인하고 자신은 아무런 이상이 없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정신적인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자신은 정신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 주장 하는 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주장한 심리적인 고통을 인정하면 자아가 받는 엄청난 괴로움을 방어하기 위해서 부인(denial)이라는 방어 기재를 사용해서 자신의 자아를 달래는 것으로 이것이 자아 속임수 임을 본인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즉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조현병 환자들이 치료자에게 조현병이 정신분석으로 치료 되어질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왜 치료자가 스스로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어떤 정신장애든지 치료되어질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는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자신의 정신적인 문제를 스스로 인정을 해야 그 다음 단계로써 치료가 시작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정신장애자들 중에서 알코올 중독자들의 특징이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면서 8자 걸음을 걷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술을 많이 마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에서 볼 수 있다. 알코올 중독자들의 자발적인 모임인 AA(익명의 알코올 중독자들의 모임) 그룹은 그들의 십계명이 있다. 1 조가 나는 알코올 중독자 입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서로 인사를 한다. 우리가 군대에서 선임이나 장교들에게 경례를 할 때 충성” “안전”(수송부), “경계”(초소 경비) 등의 구호를 붙이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스스로가 심리적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해서 부모님이나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아라 라고 권유를 하면 나를 왜 정신병자로 취급하느냐?”라고 화를 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 심각성을 알고 부모가 그를 강제로 입원을 시키거나 강압으로 치료자에게 데리고 와서 치료를 요청하는 것이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들의 특징이다. 이러한 환자들은 치료를 받으려고 하지 않고 왜 자신이 이 강제로 끌려왔다는 억울함을 강조하면서 멀쩡한 자신을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치료 자체를 수용하지 않고 자신은 이런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고 항의를 한다. 고로 치료를 한 다고 해도 치료 효과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요약을 하면 자발적으로 스스로 치료를 받겠다고 제 발로 치료 소를 찾아서 걸어 들어온 사람들은 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인간은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가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자아 결함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 자신의 자아 결함을 시인하고 인정하면 자아가 받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부인해서 자신의 고통을 완화하려는 심리적인 원리 때문이다. 고로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단점을 인정해야 그 단점을 수정하고 새로 배우고 고칠 수 있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정신분열증의 치료의 시작

 역사적으로 보면 독일의 헤몰츠(Helmholtz) 학파 들이 과학계와 의학계를 장악하면서 물리학, 화학과 수학으로써 과학을 설명해야 한다는 실증주의 학문이 전 세계로 퍼지게 되면서 고대 그리스 시대로부터 시작해서 프랑스의 계몽주의 시대로 이어진 히스테리아의 정신역동적인 연구가 기계론 적인 뇌의 조직학적 신경학에 자리를 내 줌으로써 20세기는 과학주의와 약물주의가 정신의학계를 좌지우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과학주의와 실증주의가 인간을 기계적으로 만들어서 인간의 영혼을 말살 시켜버린 것을 깨닫게 되면서 이것을 다시 물리학, 화학과 생리학으로 마음을 과학적으로 설명을 하게 된 것이 정신분석의 탄생임을 치료자가 여러 번 밝혔다.

 약물 하나 만으로 인간의 정신적인 장애들이 감기 약 혹은 생리적인 질병의 약물처럼 질병을 깨끗하게 치료를 해주었다면 정신분석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신과 약물들은 증세 그 자체를 제거해주는 것이 아니고 증세를 완화 시켜서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약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정신과 약물을 치료제라고 부르지 않고 컨트롤 제라고 부리는 이유가 그것이다. 약물은 증세를 억압해서 눌러 버리기 때문에 증세가 등장하지 못하고 막아버리고 위기를 넘기게 도와준다는 것 때문에 정신분석에서는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증세를 표면에 등장하도록 증세 장려를 해서 그 증세의 특징들을 알고 그 증세의 근본 원인을 찾아내서(대부분이 어린 시절에 발달 과정에서 받은 심리적 상처들) 그 원인을 제거해서 자아의 능력을 개발해서 자아의 힘으로 극복하고 직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정신분석 치료의 핵심이다. 더 붙인다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갈등들과 어려운 심리적인 감정들을 모두 약물이 아닌 자아의 힘으로 해결하고 있는 것을 보라!

프로이트는 그가 정신분석을 창조하면서 정신분석을 신경증 치료에다 국한 시켰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제자들이 프로이트가 고안해 낸 신경증 치료를 위한 정신분석을 수정하고 보완을 해서 인격장애와 정신증(정신분열증, 조울증, 편집증 등)에 사용하게 된 역사적 배경을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에서 최초로 정신분석학을 정신분열증 환자들에게 치료를 시작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시카코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로써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공부해서 정신분석가가 된 하리 스탁 셀리번(Harry Stack Sullivan)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생물학적인 이론에 국한 된 것을 알고 나서 생물학에다 사회학과 인류학 등을 포함한 대인관계 정신분석 이론을 창안한 사람이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비판하면서 카렌 호르니(Karn Horney), 에릭 프롬(Erich-Fromm), 프리다 프롬-레이크만(Frieda From-Reichmann) 등과 함께 신 프로이트 학파(neo-Freudian)를 창설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단명으로 사망했지만 그의 이론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메닐랜드주, 로크빌에 체스트낫 롯지(Chestnut Lodge) 정신병원에서 미국에서 최초로 프롬-레이크만(독일에서 정신의학 전공)과 하놀드 실(Harold Searles)(뉴욕 의대와 하버드 의대를 졸업한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 등에 의해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순수한 정신분석 치료가 시작되어 30년 동안 많은 환자들을 치료를 했고 정신분석적으로 정신분열증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을 한 장본인들이다. 특별이 프롬-레이크만은 정신분석을 수정 보완해서 집중적 심리치료 라는 저서를 출판했고 나는 너에게 장미의 정원을 약속하지 않았다라는 치료 사례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유명하다. 그녀의 저서인 집중적 심리치료와 실(Searles)의 두 권의 저서는 치료자가 번역으로 소장하고 있다.

두 번째로 정신분열증의 치료에 정신분석을 응용한 학자는 뉴욕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학자인 실바노 아르에티(Silvano Arieti)로써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통원 치료를 최초로 시도한 사람으로 그의 저서인 정신분열증의 해석은 정신분열증 정신분석적 역동치료의 고전으로 유명한 저서이다. 그의 제자들로 뉴욕 학파들인 마이켈 스톤(Michel Stone), 헤리 엘버트(Harry Albert), 데이비드 포레스트(David Forest)등이 중심이 되어 정신분열증 환자의 병원 입원 치료와 통원치료의 모델을 제시해서 그들은 치료 초반기에 약물을 사용해서 급성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증세들을 완화시키고 점차적으로 약물을 줄이면서 정신분석 치료의 모델을 제시한 사람들이다(치료자 역시 그들의 모델을 사용).아르에티의 2권의 저서와 스톤의 2권의 저서는 주㈜를 참고하기 바란다.

세 번째로 중부지역에서는 일리노이 의과대학의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피터 지오나치니(Peter Giovacchini)가 있다. 그는 영국인으로 프로이트의 독일어 정신분석을 영어로 번역해서 지금은 정신분석의 영어의 모델이 된 사람인 제임즈 스트라치(James Strachy)밑에서 11년 동안 개인 정신분석 치료와 공부를 해서 정신분석가가 된 도날드 위니코트(Donald Winnicott)의 계보로 7권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저서를 남긴 사람으로 정신분열증에 정신분석의 치료를 응용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7권의 저서는 주㈜를 참고로 하기 바란다.

네 번째로 서부지역에서는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나 정신분석학자인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an)과 브로이스 보이어(Bryce Boyer)가 있다. 오가덴은 예일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 의사로써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정신분석가가 되어 영국의 정통적 정신분석 기관인 타비스톡 크리닉(Tailstock Clinic)에서 2년간 조교수로 연구한 경력으로 심한 정신분열증환자들의 치료의 모델을 제공한 사람으로 그리고 보이어는 그의 어머니가 정신분열증 환자로써 어린 시절의 그의 경험이 정신분열증 환자의 정신분석 치료를 도입해서 성공적인 치료를 한 사람이다. 오가덴의 저서 5권과 보이어의 저서 3권은 주㈜를 참고하기 바란다.

 

영국에서 정신분열증의 정신분석적인 치료의 시작

 프로이트의 제자인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어린이 치료에 응용해서 소아 정신분석학을 창조한 장본인으로 놀이 치료를 고안해서 어른의 꿈 분석을 대신한 사람이다. 그녀는 영국에 처음으로 정신분석을 소개한 두 명의 정신분석가인 제임스 스트라치와 어네스트 존(Ernest Jones)의 초청으로 영국에서 소아 정신분석을 소개하면서 이후에 영국에 귀화해서 대상관계 이론을 창조한 사람이다. 그녀는 프로이트의 신경증 치료를 어린이 정신증 치료에 응용하게 되면서 그녀의 대상관계 이론은 이후에 정신분열등과 자폐증의 치료에 핵심으로 등장하게 된다. 그녀 밑에서 대상관계 이론은 어린이 자폐증의 연구로 평생을 보낸 프란시스 투스틴(Frances Tustin)이 있다. 그녀의 2권의 저서는 주㈜를 참고하기 바란다.

 그녀의 대상관계 이론은 프로이트의 이론과 갈등을 일으키면서 영국에서 정신분석 학파가 프로이트의 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를 따르는 정통파 정신분석 학파와 크레인을 따르는 국제 정신분석 학파로 양분되었다. 그녀의 제자로 그녀 밑에서 정신분열증의 치료를 위해서 세 명의 제자들이 등장하게 된다. 폴란드에서 의사로 영국에 와서 정신분석가가 된 한나 세갈, 외과 의사로써 정신분석가가 된 윌프레드 비용(Wilfred Bion) 그리고 독일에서 정신과 의사로써 영국에 와서 정신분석가가 된 하버드 로젠필드(Herbart Rosenfeld)가 그들이다. 그들은 크레인의 대상관계 이론을 수정 보완을 해서 정신분열증 치료에 공헌을 했다. 세갈의 3권의 저서와 로젠필트의 2권의 저서는 주㈜를 참고하기 바란다.

 정신분석은 신경증 환자의 치료 기법이기 때문에 이들을 수정 보완하고 새로운 기법들과 이론들을 첨가한 정신분석은 학자들에 의해서 다양하게 이름이 붙여지고 있다. 일부는 정신분석 심리치료 혹은 정신 역동적 치료 혹은 역동적 심리치료 혹은 집중적 심리치료 등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치료자는 뉴욕의 코넬 의과대학 교수인자 정신분석학자인 컨버그(Kernberg)의 이론을 수용해서 정신분석 심리치료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치료자의 조현병(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 소개

 치료자는 많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위에서 언급한 학자들의 치료 이론과 치료 기법들을 응용해서 정신분열증 환자의 치료에 적용해서 쌓은 경력이 35년째이다. 그러나 35년의 모든 기간을 정인분열증 환자 하나에 집중한 것은 아니다. 치료자는 정신의학 전반에 걸쳐서 연구와 치료를 해 왔고 유일하게 자폐증 치료(놀이치료)를 제외하면 모든 정신장애들의 치료를 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정신분열증 치료의 홈 페이지를 10년 전에 만들어서 인터넷에 올려 놓았으니 이론적인 면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도 치료 사례들은 치료의 과정을 순서대로 익명으로 소개를 해 놓았기 때문에 정신의학을 연구하거나 치료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참고를 하기 바란다.

 조현병을 연구하면서 치료자가 느낀 것은 환자의 부모님들이 이 병의 이해 부족으로 이 장애가 최하 5년에서 최고 10년 정도의 치료 기간이 소요된다는 것을 모르고 첫 6개월의 치료 계약(치료자는 6개월 이하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모든 정신장애에서 최소한 6개월 이상의 치료 기간이 필요하다는 인식 때문에)이 끝나갈 시점에서 혹은 1년 혹은 2년의 치료 기간이 끝날 시점에서 이제 조현병을 가진 젊은이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는 시점에서 치료를 중단해버리는 것 때문에 치료의 가능성이 나타나는 시점에서 치료가 중지되어버리는 것을 수 없이 경험을 했다.

 조현병은 환청과 환각이 특징이다. 초반기에 약물의 도움으로 환각과 환청이 없어지고 치료를 받는 사람이 치료자의 치료 기법과 치료 과정에 익숙해지게 되면 치료자는 약물을 복용을 조금씩 줄여가면서 완전히 약물을 제거하고 약물 중단으로 등장하는 증세들을 하나씩 분석으로 자아의 대응 능력을 개발하도록 도와준다.

 지금까지 치료자가 성공적으로 치료를 한 정신분열증 환자는 세 사람으로 꼽힌다. 첫 번째 젊은이는 30대 초반으로 자신의 거주지 아파트의 앞 동에서 중년의 여성과 그녀의 딸이 그를 감시하고 관찰하고 쳐다보는 것이 6개월 이상 진행되면서 그가 그들의 감시와 감독에 분노해서(사생활 침해) 그녀의 아파트 도어 문에다 스프레이로 욕설 화장 년(섹스적으로 더러운 여성의 욕설)의 소굴등의 욕설을 몇 번 썼던 적이 있고 그리고 도어 벨에 반응이 없자(감시의 항의를 위해서) 도어 벨에 신문지에 놓고 불을 지르다가 바로 앞의 주인에게 발각되어 경찰에 연행되어 정신병원에 입원 치료를 3개월 받다가 퇴원 후에 통원 치료를 받고 있던 중에 약물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을 눈치챈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어머니에 의해서 치료자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고 치료를 받게 되었다. 경찰의 조사 과정에서 그 환청의 여성들은 그 집에는 없는 환각적인 인물임이 밝혀졌고 그리고 가족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과 부모님의 그러한 사건이 터져서 경찰에 연행되어지기 전까지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모르고 있었다(소통 부재).

 그는 입원 직후에는 약물을 규칙적으로 복용을 해 왔으나 3개월이 입원에서 약물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 때문에 약물에 대한 불신으로 약물을 아예 복용하지 않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시작했다(약물 복용은 강제로 먹일 수가 없다). 1주일에 2회씩 1회당 2시간으로 2년 정도 치료를 했을 때 그 젊은이는 그의 눈에 만 보이는 환각 증세 즉 중년 여성과 사춘기의 그녀의 딸이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즉 환각 증세가 순수한 정신분석 심리치료에 의해서 제거되어진 것이다.  그 시점에서 아버지가 IMF의 타격으로 사업에 부도가 나면서 심리치료를 중단한 것이 안타까운 사례로 남게 되었다.

 그 다음에는 10년 동안 3번이나 정신병원에 입원 치료를 했던 경험이 있는 50대 중반의 여성이 약물의 복용에도 불구하고 잠을 잘 수 없다는 호소에 4년 전에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았던 30대 후반의 그의 아들의 권유로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1주일에 1 3시간씩 집중적인 심리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4살 때 아버지의 잃었고 외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재혼한 어머니의 자녀들을 돌보아주기 위해서 양부와 씨 다른 3명의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그녀의 문제가 시작된 것을 치료의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녀는 친 어머니와 양부의 소통 단절과 학대에서 결혼 후에 정신분열증이 발발 했다는 정신분열증의 원인들과 환청의 원인들을 정신분석 치료의 과정에서 분석으로 밝혀진 것을 깨닫게 되면서 10년간의 정신분열증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이후에 부인의 치료 효과를 눈으로 확인한 부인의 남편이 6개월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았고 그리고 그의 권유로 시집간 딸이 6개월 심리치료를 받아서 그 가족 구성원들 모두가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받은 기록을 세웠다.

 다음에 소개를 하고 싶은 사람은 2017 2월 달에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요청한 젊은이로써 그는 5년 동안 조현병을 앓고 있는 대학 휴학생으로 정신분석으로 치료가 가능한지?를 질문을 해 온 학생 중의 한 사람으로 치료자가 스스로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싶다고 질문을 하는 조현병을 가진 사람들은 정신분석 치료로써 치료될 수 있다는 확신을 제공했을 때 그가 치료자를 찾아와서 2시간 컨설팅을 받고 나서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하고 정신분석 치료를 2월 초순부터 시작을 하게 되었다.

분석의 과정에서 그는 고교 시절에 전교에서 몇 등을 한 재원으로써 지방에서 이름이 있는 xx대학 영문과에 입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대인관계의 문제 때문에 첫 학기에서 학점이 0.5 를 받고 나서 충격을 받아서 여름 한달 동안 기도원에서 기도로써 수련을 받고(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나서 가을 학기에 공부를 시작 했으나 더 이상 공부를 계속할 수 없어서 휴학으로 시작되었고 이후에 5번의 복학을 시도 했지만 번번히 통과를 하지 못하고 낙방해서 군에 입대를 했다가 3개월 만에 정신분열증의 진단으로 의병 제대를 한 젊은이였다. 그는 지금까지 신경정신과 약물 치료에 실패를 뼈저리게 실감을 했고 4개월 동안 한의사에게 침술과 식이 요법(한의사 이재마의 태음인과 태양인 등의 체질 이론)을 받았으나 실패하고 나서 3개월 동안 심리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실패 후에 정신병원에 1달 동안 입원의 기록을 2 년마다 한번씩 두 번이나 가지고 있었다. 그가 새로운 치료 법으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요청했고 심리치료가 시작되었다.

그의 분석 치료 과정에서 그의 문제점들이 하나씩 밝혀지게 되었고 점차로 그의 문제들의 원인을 깨달아 가면서 조금씩 마음의 안전과 안정을 개발할 수 있게 되어 가면서 중간고사와 기말 고사를 무난하게 통과하게 되었다. 그는 치료자에게 처음 심리치료를 시작하면서 2월 달에는 1주일에 1 2시간으로 월, , , , 금요일 5회로 1주일에 10시간씩 집중적인 치료를 받았다. 3월 달에 개학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치료자는 그의 핵심이 인간관계가 되지 않는 대인공포증임을 알고 나서 xx 대학 입학 이전에 O.T 모임들과 M.T 모임들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동료들과 안면을 익혀야 함을 강조를 했다(그는 과거에는 그러한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 그는 편도 3시간 30분이 걸리는 서울에 양복 7시간을 투자해서 2시간의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강한 치료의 의지를 가진 청년이었다. 3월 달에 입학 이후에는 부산으로 치료를 옮겨서(치료자는 월-목요일은 서울에서 금, . 일요일은 부산) 역시 3시간 20분이 걸리는 양복 7시간의 시간을 투자에서 2시간의 심리치료를 받으러 왔다.

중간 고사 직전에 그는 약물의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치료자의 만류로 중간 고사와 기말 고사를 끝내고 나서 약물을 중단하자고 한 제의를 수용해서 기말 고사를 끝내고 약물을 중단하면서 이후에 등장하는 증세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의 분석으로 치료를 잘 진행해 나가고 있다. 그는 이번 봄 학기를 끝내고 그가 받은 학점은 4.50의 만점에 4.34로써 7개의 21학점에서 5개의 과목이 A+로 그리고 2개의 과목이 A 학점을 받았다고 치료자에게 보고를 해서 치료자의 아낌없는 칭찬을 받았다. 그는 이제 5년 만에 처음으로 성공적으로 그것도 최고의 학점으로 통과를 해서 이후부터는 공부에 장애물은 없을 것이 확실시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는 것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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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위에서 학자들이 쓴 저서들은 치료자가 공부를 하면서 중요한 내용들을 우리 말로 요약해서 공부를 하다가 이후부터 아예 책 자체를 그대로 전부 번역으로 공부한 자료들이 인터넷에서 소개되어 있으니 그들의 저서를 아마죤에서 직접 구입하거나 혹은 번역된 우리나라 한글판을 원하는 사람들은 치료자의 전문서적 안내를 참고하기 바란다.

 

다음에서는 위의 성공적인 정신분석 심리치료의 사례들을 소개를 해서 조현병을 가진 본인들과 그리고 부모님들에게 조현병의 실체에 대해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카우치(Couch)에 누워서 정신분석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

 

대상: 조울증과 조현병으로 진단된 27세의 T

증세: T군이 군 복무 중에 처음에는 조울증으로 그리고 의병 제대 직전에는 조현병으로 진단이 되었음

진단: 조울증과 정신분열증으로 진단되어 군에서 2달 그리고 1년 전에 한달 가량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음

연결: T군이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조현병으로 약물 치료를 받고 있는데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를 해서 T군의 아버지와 통화 후에 치료자에게 2기간 컨설팅을 받게 되었음

치료 기간: 컨설팅 이후에 1주일에 5일로 하루에 2시간씩 1주일에 10시간씩 집중적인 치료를 받기로 했음

치료 결과: 아래의 분석은 첫 2시간 컨설팅의 결과를 요약한 것임

 

치료의 과정

 치료자는 며칠 전에 한 통의 e-메일을 받았다. 27세의 대학생으로 조현병으로 약물 복용을 하고 있는데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겠는지? 문의 메일이 왔고 치료자가 정신분열증은 스스로 치료를 받겠다는 자아 의지만 있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 치료 비용과 6개월 치료 계약을 이야기를 하면서 왜 6개월의 치료 계약을 하는지?를 설명을 하는 메일을 보내고 나서 아버지가 치료자에게 아들이 서울로 혼자 올라가서 2시간 컨설팅을 받아보고 치료를 할 것인지?를 결정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T군은 첫 컨설팅 시간인 월요일 오후 3시에 정확하게 어머니와 함께 도착을 했다. 토요일 휴대전화 통화에서 T군의 아버지가 치료자와 통화를 하면서 지방의 대 도시 xx 시에 살고 있는 T군이 서울에 있는 치료자의 사무실에 혼자서 올라와서 치료를 받겠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치료자는 T군이 혼자 올 것으로 생각을 했었다.

 어머니에게 아들과 어머니가 함께 2시간을 컨설팅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어머니는 별 다른 할 이야기가 없으니 그냥 밖에서 2시간의 치료 회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치료자는 아들인 T군과 1시간 30분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나머지 30분은 어머니를 모시고 아드님과 같이 문제의 핵심과 앞으로 치료의 방향등을 이야기를 할 것이니 연락이 가면 치료실로 오시라고 이야기를 해서 치료실 밖으로 내 보냈다.

 치료가 시작되었다. T군은 큰 키에( 190cm 정도로 보였다) 핸섬한 미남자로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이곳에는 예의 범절을 따지지 말고 그리고 말을 앞과 뒤로 가리지 말고 편안하게 하면 된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치료자가 눈을 자주 감는데 혹시 듣기 싫어서 오해를 하지 말고 치료자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연결해야 하기 때문에 경청하기 위해서 눈을 감고 듣는데 T군도 눈을 감고 이야기를 해도 되고 뒤에 반쯤 머리를 기대고 이야기를 해도 된다는 것을 시작 전에 이야기를 하고 치료가 시작되었다.

 T군은 어디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할지 몰라했다. 치료자는 사람들과 관계의 어려움이 있지 않는가?라고 물었을 때 T군이 시인을 했다. 언제부터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느꼈는지?를 물었을 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중학교 시절에서부터 시작 되었다.

 T군은 중학교 시절부터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나 큰 문제는 없었다. 중학교 2학년 시점에서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 반에서 10등 정도 유지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심화반에서 5등 혹은 6등 정도 하다가 성적이 향상되어 특수반에 들어가서 반에서 3-4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치료자가 심화반과 특수반에 몇 명 정도가 되는가?라고 물었을 때 T군은 20 여명 정도가 된다고 했다. 치료자가 특수반에서 3-4등정도라면 전교에서 3등 혹은 4등 정도가 아닌가?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했다.

 고교 시절에는 대인관계는 일종의 시간 낭비라고 생각을 해서 T군은 공부에 전념을 했고 대학은 다른 지역에 있는 이름있는 xx 대학에 들어갔다. 그 대학은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 지방에서 온 T군이 기숙사에 들어갔다. 기숙사에는 3명이 함께 했는데 두 명은 2학년 학생들이었다. 그 시점에서 T군이 14살 위의 한 누나를 짝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를 혼자서 짝 사랑을 하다가 여름 방학 직전에 기도원에서 그 누나의 전화 번호를 알 게 되었다. 그 누나는 기독교 교인이었다. T군은 그 누나의 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소개를 하면서 너무 작은 목소리여서 누나가 "네가 지금 피곤하느냐?"라고 물었고 T군이 ""라고 대답을 하면서 "누나도 잠이 오느냐?"라고 물었고 그렇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전화 후에 부자연스러움을 느끼면서 껄끄러움을 느꼈다. 하루 이틀 이후에 누나에게 문제 메시지로 전화를 잘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나서 기숙사의 선배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면서 그들의 T군의 뒷담을 하는 것을 느끼고 힘들어지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아버지에게 호소를 하게 되었고 아버지가 그 대학에 와서 휴학계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 다음 해에 다시 복학을 해서 또 다시 기숙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T군은 이번에는 4명이 한 조가 되어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선배가 두명이고 나머지 한 명은 1학년이었는데 선배와 관계보다 후배와 관계가 어려워졌다. 다시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해서 휴학계를 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해 T군은 공군에 입대를 했다. 군 입대를 앞두고 서울에서 xx에 일을 하고 있는 누나를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누나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써 T군에게 신앙과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공군에 입대해서 훈련소에서 훈련을 끝내고 자대에 배치를 받아서 군복무를 하면서 선임들과 갈등 관계로 힘들어지면서 선임들에게 폭력의 위협을 가하려고 한 것 때문에 대화를 하기로 하고 대화를 시도하다가 대화가 잘 되지 않아서 서로 칠판에 A4 용지에 서로 글을 써서 대화를 하자고 했으나 선임들이 거부를 하는 바람에 내무반 원사에게 면담을 요청해서 그 원사에게 T군 자신을 북한에 스파이로 보내달라고 요청을 했다.

 북한은 먹고 사는 것이 어렵고 남한은 스트레스가 심한 나라임을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을 북한 스파이로 보내주면 자신이 김정은의 후계자가될 수 있다는 말을 했을 때 그 원사는 같이 병원에 가보다고 해서 군병원에서 진단 결과 양극성 장애(조울증)로 진단이 나왔고 2개월 동안 병원에서 약물 복용으로 병원 생활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슴을 찌르는 통증 때문에 병원에 호소를 했고 검사 결과 신체적 이상은 발견되어지지 않았다. 계속된 통증 때문에 퇴원 시켜달라고 떼를 썼을 때 담당 정신과 의사가 2주일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2주일 후면 퇴원 시켜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2주일 후에 T군은 조현병의 이름으로 의병 제대로 군복무를 면제 받고 귀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때부터 약물은 복용을 하고 있는데 한번씩 약물을 빼 먹기도 한다고 했다. 1년을 쉰 후에 다시 대학에 2학년에 복학을 했다. 1학년 때는 전공이 없이 교양과목을 받다가 2학년이 되면서 전공을 영문학으로 선택을 했다. 이번에는 동아리 가입을 위해서 댄스 동아리에 신청을 했는데 인터뷰에서 떨어졌다. 억울해서 회장을 직접 만나고 싶다고 간청을 했고 들어주지 않자 학교 알림 까페에서 댄스 동아리의 부적당한 평가에 항의를 했고 회장과 인터뷰자와 T군이 대화를 가졌는데 회장과 심한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가입은 거부되었다. 그 다음 동아리인 그 대학의 외국인들과 함께 하는 동아리를 신청을 했는데 그 동아리의 인터뷰에서 낙방을 했다.

 이후에 T군은 그 대학의 부정비리를 제보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xx 방송사에 저녁 늦게 찾아갔다. 그리고 경비원에게 방송사로 들어가도록 허락을 요구했다. 그 경비원이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시비가 붙어서 옥신 각신하다가 경찰이 출동해서 파출소로 연행이 되었다. 그 파출소에서 부모님에게 연락이 갔고 부모님이 근처에 사는 친척의 집에 연락을 해서 그 친척집에 자고 그 다음 날 인근에 있는 xx 병원의 정신 병동에 2달 가량 입원을 하고 나서 집으로 복귀를 했다.

 1년의 쉬고 나서 그 해 6월 달에 필립핀에 선교활동 겸에 그곳에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 필립핀으로 갔다. 필립핀은 기후가 덥고 습기가 찬 곳으로 그리고 필립핀은 영어를 사용하면서 그들의 토착 언어를 배우다 보니까 어려움이 발생했다. 그 시점에서 T군은 유체 이탈을 경험을 했다. 몸 안에서 자신의 영혼이 빠져 나오는데 뚱뚱한 피부가 검은 여성이 화가 난 표정으로 자신의 영혼을 몸으로 집어 넣어 버리는 유체이탈을 경험하고 나서 한국에서 온 교회 선교팀에 합류해서 1달 만에 귀국을 했다.

 작년에 T군은 대입 수능 공부를 초기부터 1년 동안 열심히 해서 작년 12월에 그의 고향에 있는 xx 대학교 화공과에 합력을 하고 2017 3월에 입학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치료자는 가족 관계를 물어 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T군은 모태 신앙이라고 했다. 그래서 인지 T군의 이름이 xx 군으로 치료자는 예수의 12제자 중에 한 사람의 이름인 것을 보고 캐토틱 신자로 알았으나 개신교 신자라고 했다. 어머니가 전업 주부로 양육을 했고 4살 아래인 여동생이 지방의 xx 대학에 다니고 있고 셋째가 여동생으로 서울에 있는 xx 대학에 그리고 막내인 남동생이 이번에 대학에 합력해서 3월달에 대학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치료자가 T군에게 지금까지 신경정신과 혹은 한의사 혹은 심리상담 혹은 심리치료를 받아본 적이 있는지? 물어 보았을 때 신경정신과에서 약물을 3주일마다 방문해서 저녁 시간에 한 알씩 복용을 하고 있고 그리고 작년에 4월달에 시작해서 8월달까지 4개월 정도 한의사의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어떻게 치료를 받았는지? 물어 보았을 때 T군이 소음인으로 매운 음식과 짠 먹식을 먹지 말고 식단을 짜 주면서 매일 침을 맞았다고 했다. 그러나 별 도움이되지 않아서 그만 두었다고 했다. 심리상담 혹은 심리치료를 받아온 적이 있는지 물었을 때 그의 집 근처에서 마음 사랑 심리상담을 4개월 정도 받았다고 했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추천으로 그의 지역에 xx대학교 교수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려고 인터뷰를 하고 나서 T군이 거부를 해서 서울에 있는 치료자에게 컨설팅을 요청한 것이라고 했다.

 치료자는 T 군에서 1시간 50분 동안 이야기를 듣고 나서 T군의 핵심 문제를 대인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정신분열증으로 간 것으로 보인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을 때 T군도 시인을 했다. T군이 기숙사에서 3명 혹은 4명의 룸메이트들과 생활을 할 때마다 갈등으로 휴학을 하게 되었고 그리고 3번 복학해서 동아리 활동을 하려고 했을 때 갈등이 폭발한 것 그리고 군에 입대해서 내무반 생활에서 그룹 활동 시에 정신분열증으로 폭발한 것 그리고 필립핀 선교 유학을 할 때 적응에 어려움으로 폭발한 것 등을 그 예로써 증거로 지적을 했을 때 T군이 인정을 했다.

 치료자는 T군이 동료들과 만나게 되면 긴장이 올라가서 어떤 말을 해야할지 어떻게 관계를 해야할찌?를 몰라서 긴장이 한계선을 넘어가서 갈등으로 폭발하게 된 것을 지적을 하면서 치료에서 과거의 상처들을 전부 재연해서 그 시쯤에서 다시 감정을 말로써 표현하고 의사 소통을 하고 관계의 갈등을 풀어 나가는 것을 치료 회기 시간에서 재연하고 다시 배우고 자아의 결함을 찾아서 수정해 나가는 것이 심리치료임을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을 지적을 했다. 그리고 T군에게 약 1시간 50분 동안 치료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이 안정되고 치료를 받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를 물어 보았을 때 T군은 마음이 안정되고 치료자 선생님에게 심리치료를 받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치료를 받고 싶다고 했다.

 치료자는 치료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를 연결해서 T군과 어머니와 함께 T군의 핵심 문제가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지적하면서 치료에서는 과거의 심리적 상처들을 재연하고 의사 소통과 감정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훈련과 관계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들을 새로 배우고 자아의 결함을 찾아서 수정해나가는 치료를 하게 될 것을 강조를 했다.

 치료자는 어머니에게 3가지 방법을 제시를 했다. 올해 3월에 입학을 앞두고 남아 있는 약 1.5개월을 1주일에 5일씩 2시간씩 집중적인 심리치료를 해서 입학 전에 약 40시간의 심리치료를 받아서 심리적 원리를 알고 대인관계를 하는 방법과 훈련을 받아서 일종의 준비 운동을 하게 해서 입학 후에 1주일에 1회씩 심리치료를 받으면서 학교에서 생기는 갈등들을 다루어 나가는 방법을 이야기를 했다.

 두 번째는 그냥 1주일에 1회 혹은 2회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서 치료를 계속해서 받아 가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로는 입학을 9월달로 미루고 1주일에 1회 혹은 2회로 심리치료를 받아서 어느 정도 준비가 된 다음에 올해 9월달에 입학을 하는 것을 가족구성원들과 의논해 보고 결정을 하도록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생기는 갈등들을 풀어나가는 것을 강조하면서 심리치료는 입학 후에 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라는 의견을 이야기를 했다. 치료자는 입학 후에 생기는 갈등을 지금 조용할 때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과거의 갈등의 상처들을 다시 재연해서 훈련을 받고 나서 입학 후에는 계속해서 동료들과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임을 지적을 했다.

 어머니는 서울의 인근에 xx 시에 살고 있는 이모가 T군과 애착 관계가 잘 되어 있으니 이모 집에서 1주일에 5일 동안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아서 3월 입학 전에 약 40시간 정도의 심리치료를 통해서 준비 운동을 하게 되면 입학 후에 계속해서 치료를 받으면서 동료들과 갈등들을 해결해 나가는 쪽으로 T군과 어머니가 동의를 해서 내일 화요일부터 당장 심리치료를 받기로 하고 내일 오후 5시에 도착을 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아들 T군이 토요일에는 과외 지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귀뜸을 해 주었다. 치료자는 좋은 현상으로 입학 후에 토요일에 시간이 어려우면 일요일에 부산으로 와도 되고 주 중에 서울에 올라와서 치료를 받으면 되는데 그 문제를 입학 후에 의논해서 조정을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지금까지 신경정신과의 약물 치료, 한의사의 침술 치료와 음식 치료 그리고 3개월 동안 심리 상담 치료를 받았으나 실패를 했고 또 지방에서 이름난 xx대학 교수와 인터뷰를 해 본 결과 T군이 치료자와 심리치료를 받겠다고 마음의 결심이 선 것을 강조를 하면서 아들 T군의 심리치료를 받을 것을 6개월 계약을 하기로 했다.

 T군과 어머니가 치료실을 나가고 나서 약 30분 후에 아버지가 전화를 해서 통화를 했을 때 치료자가 지금 입학 전까지 집중적으로 치료를 해서 입학 후에 생길 갈등을 사전에 대비를 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해주었고 아들 T군과 어머니가 집중적인 심리치료를 받고 싶다고 결정을 한 것을 이야기를 해서 아버지가 동의를 했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서는 T군이 6개월 치료 계약을 하고 1주일에 5일간 1회에 2시간씩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하게 되었다. 다음의 홈 페이지에 들어가 보세요..

http://blog.naver.com/psychclinic/221051894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