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치(Couch)에 누워서 정신분석적인 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의 모습

 

 자아 주체성을 아시나요? 1 

 

자아 주체성이라는 말은 영어로 아이텐티티(Idendity)라는 에릭슨이 만든 신조어이다. 자아 주체성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自我 主體性 이라는 한자 말로 내 몸의 주인은 내 자아라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자아 정체성(自我 正體性)이라는 말로 많이 쓰는데 내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 내 자아라는 말로써 해석된다면 후자 보다 전자의 해석이 정확하다. 자아가 내 몸을 어떻게 바르게 한다는 말인가? 자아 주체성이라는 용어보다 자아 정체성이라는 말이 일반적인 용어가 된 것은 자아 주체성이라는 말이 50-60년데 미국에서 에릭슨의 아이덴티티(Identity)라는 영어가 우리말로 번역될 때 주체성이라는 말이 북한의 김일성의 전용어라고 피하게 된 것이 주된 원인이 아닌가? 유추해 본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프로이트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했기 때문에 원래 정신분석은 독일어로 되어있었다. 이 독일어의 정신분석 원본을 영어로 번역한 사람이 영국인 제임즈 스트라취(James Strachey)이다. 그는 정신분석에 메니아가 되어서 정신분석에 대한 흥미와 연구를 위해서 1922년에 프로이트를 방문해서 2년 동안 프로이트 밑에서 공부를 한 이후에 정신분석 자격증을 얻어서 영국에서 정신분석 치료를 했다. 특이하게 프로이트의 제자로써 의과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정상적인 정신분석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고 정신분석가 밑에서 개인 수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자격증에 논란이 많았다. 그는 캠프리치 대학의 학사 학위가 전부였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서 정신분석 학회 정회원이 되었고 자격증을 얻어서 정신분석가가 되어서 이후에 그는 정신분석의 초반기 시점에서 특별한 정신분석적인 교육과 훈련이 정립되지 않는 시쯤에서 정신분석가의 자격증을 딴 행운아라고 스스로 고백을 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의 자격증을 의과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것에 반대를 해서 정신분석 학교를 졸업하고 정신분석가의 개인 수련을 받은 사람에게 정신분석가의 자격증의 수여하도록 했다. 그런데 정신분석학이 미국으로 들어가서 초반기 미국에서는 정신분석가의 자격증을 의과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에게만 국한을 시켰다. 이후에 많은 분석가들과 심리학자들의 법적인 투쟁의 결과 정신분석은 심리학, 정신의학, 정신 간호학 그리고 사회 복지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정신분석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었고 지금은 정신분석 학교와 분석가로부터 개인 수련의 과정을 거친 사람들에게 자격증이 수여되고 있다.

미국에서 공식적인 정신분석 학교가 종합 대학에 설치된 곳은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과 뉴욕 대학으로 그곳에서는 박사 후 정신분석 프로그램으로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정신분석학교에 들어가서 정신분석 과정을 이수하고 수련을 거친 후에 정신분석 자격증을 취득하고 있고 그리고 미국의 대 도시에는 정신분석 학교들이 여러 개식 설립이 되어 특수 전문 대학의 형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참고로 하기 바란다.

제임즈 스트라취는 그의 친구이자 신경과 의사였던 프로이트의 전기를 쓴 영국인 어네스트 존(Ernest Jones)과 함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을 영어로 번역을 하면서 이후에 존(Jones)이 번역 일을 스트라취에게 일임함으로써 그와 그의 부인이 프로이트의 모든 정신분석 논문들과 서적들을 완역해서 24 권의 정신분석 표준 전집으로 그의 영어 번역이 이후에 정신분석의 모체가 되었고 나치의 정신분석 탄압으로 정신분석의 서적들이 불태워 사라지자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독일에서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영어의 정신분석을 다시 독일어로 번역을 해서 사용하는 모순이 벌어지게 된 것을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특별히 흥미 있는 것은 프로이트의 독일어를 영어로 번역을 할 때 프로이트는 라는 말로 “I”, 원초자아를 “it”, 본능을 instinct를 사용했는데 스트라취가 나를 ego로 그리고 원초자아를 id로 그리고 본능을 drive(욕구)로 번역된 것이 오늘날 자아(ego), 원초자아(id), 욕구(drive)로 정신분석의 핵심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것은 참고로 할만 하다. 또 한가지는 스트라취가 어네스트 존과 함께 비엔나에서 소아 정신분석을 창조한 메나리 크레인(Melanie Klein)을 영국으로 초대해서 영국에서 대상관계 이론을 창시하게 한 장본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에 프로이트의 막내 딸인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와 메나리 크레인 사이에 소아 정신분석학의 원조 논쟁이 벌어져서 두 개의 학파가 분열되어 전자는 정통파 정신분석 학파로 그리고 후자는 국제 정신분석 학파로 쪼개지게 되었을 때 스트라취는 두 사람의 공헌을 모두 인정함으로써 어느 한쪽에 지지를 선언하지 않고 중립 학파인 독립학파가 되었다는 것도 정신분석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상식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을 창조한 이후에 자아(self)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자아를 ego로 사용을 했다. 왜 프로이트가 자아를 self로 사용하지 않고 ego로 사용했는지? 는 하버드 대학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모델(Modell) ego라는 말은 과학적인 용어로써 방어 기능, 학습 기능, 관찰기능, 중재 기능, 적응 기능 등의 다양한 기능으로 과학적인 측정을 할 수 있는 용어로 사용할 수 있지만 자아(self)라는 말은 과학적으로 정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후에 자아라는 말이 ego self 사이에 혼란을 일으키게 되자 1927년에 헤인즈 하트만(Heinz Hartmann)정신분석의 기초라는 논문에서 ego는 자아의 행정 기능으로 그리고 self는 너(object)와 나(subject = self)의 구분으로 정의를 내림으로써 self는 나를 대표하는 전문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하트만은 비엔나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로써 프로이트의 제 1세대 정신분석가이다. 그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의식으로 마음의 위계이론의 초반기 중심에서 원초자아 중심의 생물학적인 강조에서 사회성이 중심이 되는 ego 중심의 심리학으로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 1937년에 쓴 “ego 7가지 방어기재의 저서와 더불어서 ego 심리학의 창설자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에 그는 1938년에 나치의 박해 때문에 미국에 뉴욕에 이민을 가서 뉴욕 정신분석학회의 회장으로 어네스트 크리스(Ernest Kris)와 루돌프 로웬스테인(Rudolph Loewenstein)과 함께 ego 심리학자의 3두 마차가 되었다.

다시 자아 주체성 이론으로 되돌아가 보자. 프로이트는 인간의 발달을 5단계로 나누었다. 구순기(0-1), 항문기(1-3), 오디팔기(3-5), 잠재기(6-12), 성기기(13-19)로 나누어서 사춘기가 끝나면 어른이 되어 출산과 생산에 참가하는 성인으로써 성장이 끝나는 것으로 이론화 했다.

이후에 프로이트의 제자들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섹스 심리학과 생물학에 제한되어진 것을 비판하고 이것을 사회성이 강조되는 이론으로 새로운 확대를 한 사람들이 바로 신 프로이트 학파들이다. 시카고 의과대학 출신의 정신분석가인 대인관계 정신분석의 창설자인 셀리번(Sullivan), 독일에서 여성으로 의과대학에서 의사가 된 몇몇 여성들 중에 한 사람으로 이후에 독일의 정신분석학회 회장인 칼 아브라함(Karl Abraham) 밑에서 분석을 받은 후에 정신분석가가 되어 미국으로 망명해서 프로이트의 남근 질투를 반박한 페미니스트 정신분석가가 된 카렌 호르니(Karen Horney) 그리고 독일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여성 정신과 의사가 되었다가 이후에 독일 정신분석학교에서 정신분석가가 되어 미국에 망명해서 체스트 낫트롯지(Chestnut Lodeg)에서 정신분열증 환자들을 정신분석으로 치료한 프롬 레이크만(Fromm-Reikmann) 등이 추축이 되어 정신분석이 지나친 생물학에 치우친 것을 사회성의 연구가 첨가되어 정신분석의 폭이 확대되어지게 되었다.

미국 심리학회 초대 회장인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 1호인 스탠리 홀(Stanley Hall)이 클락크 대학 총장이 되었을 때 1909년에 대학 창설 20주년 기념식에 프로이트와 융(Jung)을 초대를 해서 프로이트가 미국에서 첫 정신분석을 강의를 하게 되었다. 홀은 사춘기 심리학의 대가로서 1904년에 그의 저서 사춘기에서 서 사춘기가 질풍 노도의 기간이라는 신조어를 만든 장본인이다.

홀의 사춘기 이론을 이어 받아서 정신분석에 사회학을 접목 시켜서 프로이트의 섹스 심리학(psychosexual)을 심리 사회학(psychosocial)으로 전환 시킨 장본인이 에릭 에릭슨(Erick Erikson)이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장으로 하버드 대학의 종신교수가 된 전설적인 사람이다. 그는 아버지의 사망 후에 교사였던 어머니가 재혼을 하는 바람에 우울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던 중에 그의 친한 친구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신경증 치료로써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전 세계에서 부유한 여성들이 신경증 치료를 이해서 비엔나로 몰려들면서 그들이 3-5년간 창기 치료를 위해서 비엔나에 머물게 됨으로써 그들이 데리고 온 자녀들을 위해서 미니 학교가 설립되어졌을 때 교사로 있었던 그의 친구가 미술에 재능이 있었던 에릭슨에게 편지로 보조 교사로 오라고 초청을 한 것이 인연이 되어서 그 학교에서 보조 교사로 있다가 공부를 해서 정식 교사가 되었고 이후에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양성하는 것에 어깨 너머로 정신분석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정식으로 그는 정신분석 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이트의 막내 딸인 안나 프로이트에게 수련을 받고 나서 정식으로 소아 정신분석가와 어른 정신분석가 자격증을 취득을 했다. 그가 졸업한 그날 저녁에 자격 심사위원회가 만장 일치로 에릭슨에게 자격증의 수여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에릭슨은 이후에 미국으로 망명해서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직접 인디언들의 사회에 참가해서 그들의 자녀 양육 방식을 관찰하고 프로이트의 사회성 부족을 보완해서 1963년에 어린이와 사회”(Childhood and Society)라는 저서를 출판함으로써 심리사회학의 강조가 등장하게 되었고 이후에 ego 심리학의 대가가 되었다. 그는 이후에 고졸의 졸업장으로 하버드 종신교수가 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에릭슨은 프로이트가 구순기, 항문기, 오디팔기, 잠재기, 성기기라는 5단계의 섹스 심리 발달에서 벗어나서 8단계로 성장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인간의 발달은 노연기까지 연장을 시켰다. 0-1세를 믿음 대(vs) 불신, 1-3세를 자치심 대 수치심, 의심, 3 - 5세를 주도적 대 죄의식, 6- 12세를 부지런함 대 열등감, 13 - 19세를 주체성 형성 대 주체성 혼미, 20결혼을 친밀감 대 고립, 중년기를 생산성 대 침체, 노년기를 통합 대 절망으로 구분을 했다. 그의 발달 단계는 위기를 위험 + 기회로 각 단계의 위기를 잘 극복하면 통합으로 성장과 발달을 계속할 수 있고 위기에서 통합 실패는 심리적인 장애들로 연결된다는 정반합의 변증법에 근거를 두고 이론화 한 것은 유명하다.

특별히 에릭슨은 프로이트가 무시한 사춘기의 질풍 노도의 스텐리 홀(Stanley Hall)의 이론을 이어 받아서 사춘기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기간으로 그리고 그의 유명한 자아 주체성 이론이 1950년대에 등장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그는 사춘기를 자아가 성장과 발달을 해서 자아가 삶을 살아가는데 주체가 되어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할 때 그 키를 잡고 삶을 살아가는 주체가 된다는 말로써 자아 주체성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이러한 공로로써 그는 ego 심리학자로 분류되고 있다.

여기에서 ego의 발달과 사춘기의 자아 주체성과 관계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

프로이트는 원초자아는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나는 것으로 신생아들도 어른 못지 않게 강력한 욕구를 가지고 태어난다는 그의 이론은 이후에 컴퓨터의 발달로 증명이 되었다. 신생아의 구순기는 입에 에너지의 중심이 되어 입과 혀로 빨고 먹고 뱉어내는 구순기에서 중심이 되는 기간인데 실제로 유아의 혀의 맛 봉오리가 어른보다 3-4배가 많다는 것과 신생아들은 엄마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고 엄마의 모유를 구분할 수 있다는 발달 학자들의 실험 결과들과 유아들의 뇌 세포가 3– 5세 쯤에서 어른보다 3-4배가 많다는 것이 뇌 과학자들에 의해서 밝혀졌다. 고로 원초자아는 성인 못지 않게 강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3- 5세에 형성되는 초자아는 엄마의 분신으로 엄마가 가장 가깝다고 느끼던 어린이는 어느 날 전지전능하게 보이는 거인과 같은 아버지의 등장으로 자신은 어머니로부터 분리되어 자신의 방으로 쫓겨나게 되면서 (사실은 동생의 출산으로 부모의 모든 관심이 태어난 동생에게 쏠리게 되고 자신은 부모와 떨어져서 자신의 방으로 이동) 자신의 취약함의 인식과 엄마의 포기로서 아버지의 이상화를 동일시함으로써 아버지처럼 강한 사람으로 바뀌게 된다. 고로 원초자아와 초자아는 3– 5세 사이에 확고하게 발달이 형성되는데 프로이트의 3두 마차(3마리의 말이 끌고 가는 몸의 비유)의 하나인 자아인 ego는 미성숙해서 발달을 하는데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잠깐 우리 자신에게 자문을 해 보자, 자아가 자라나는가? 를 한번 쯤 생각해 본 사람들에게 의문이 들게 되는 것은 신체가 성장과 발달을 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어린이가 자라나면서 유치원과 초등학교, ,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신체적 성장과 발달은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아가 자라난다 라는 말은 들어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자아의 성장은 눈에 보이지 않고 자아가 존재하는가? 에 대한 궁금증 때문일 것이다.

 필자 역시 미국 유학을 가서 대학,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실험 심리학에서는 자아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대학원에서 정신분석학을 알게 되면서 자아의 실체에 접촉하게 되었다. 필자가 미국에 공부 하러 가기 전에 독일의 문학 작가인 퀴트 그라스양철북”(1959) 1999년 노벨 문학상으로 1979년에 영화로 제작되어 그 영화를 보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3살 때 성장이 중지된 내 자아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내 자아가 성장을 시작했다라는 구절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후에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자아의 발달 중지와 성장의 재개라는 말이 정신분석의 전문 용어임을 알게 되어 그 의문이 저절로 풀리게 되었다.

엑릭슨은 Ego의 발달에서 박차를 가하게 되는 기간이 사춘기로 본다는 점이다. 사춘기는 영어에서 teen의 접미어가 붙은 13(thirteenth)에서 19(nineteenth)까지의 6년간의 나이 기간을 말한다. 자아의 성장 혹은 자아의 발달 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미성숙하다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어떤 나이에 적당하지 않는 행동을 우리는 미성숙한 행동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또한 사춘기 즉 청소년기는 가치의 판단과 선택과 결정을 하는 것이 미성숙하기 때문에 우리는 미성년자라고 부르지 않는가! 고로 결혼과 매매 등을 자치적으로 할 수 없고 그리고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는 것도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미성년자 관람불가라고 붙어있는 경고문을 보지 않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성년자는 보호되어져야 한다는 말은 자아가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는 말로써 자아가 성장과 발달을 한다는 말이 아닌가? 당연히 미성년자들의 보호자는 부모님과 어른들이 된다. 그들이 미성년자의 보조 자아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법적으로 미성년자는 21세가 되면 투표권이 주어지고 어른으로써 인정을 받게 되고 성인이 되는 것이다. 이 법적인 자아의 나이와 심리적 자아의 나이는 똑 같지 않다는 점이 강조된다. 즉 법적으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심리적인 성인인 되는 것이 보장 되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릭슨은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자아 주체성이 확립이 되면 자아가 단단하게 여물어 져서 자신의 삶의 스스로 결정하고 컨트롤하고 삶에서 주체가 되어 자신이 삶의 주인공이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인 독립이 이루어지면서 사춘기는 스스로 독립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법적인 나이와 무관하다는 점에서 에릭슨의 identity 는 자아 주체성으로 번역이 된다. 즉 자아 주체성은 내 몸의 주인이 내 자아가 된다는 뜻이다.

자아가 내 몸의 주인이 되는 과정을 한번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태어나서 유아들은 모든 것을 몸으로 욕구들을 표현을 하게 된다. 배가 고프면 대소변으로 불편하면 울음으로 신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불쾌감과 즐거움을 말로써 표현하는 것이 아니고 울음으로 몸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표현을 정신분석학에서는 신체적 자아라고 부른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자아는 신체적 자아이다. 이것이 성장해 가면서 언어적인 표현으로 바뀌게 되면서 어린이들은 점차적으로 자아가 신체적인 자아를 대신하게 된다는 점이다. 배고 고프면 밥을 주세요, 대소변이 마려우면 그대로 대소변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인근에 화장실이 있는가? 소변을 해도 되는가? 등의 주변 상황들을 고려하면서 자아가 신체적 표현을 대신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고로 신체적 자아가 자아로 대체되면서 자아의 발달이 가속화 되어져서 사춘기를 통과하면서 어른들의 자아로 성장을 하게 되는 것이 미성년자가 어른으로 성인으로 인정되어지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데 자아의 어떤 부분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미성숙한 사람들을 볼 때 미성숙하다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고로 자아는 항상 나이에 걸맞게 저절로 발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보자, 변태성욕자들은 3-5세의 자아를 그대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로 자아가 오디팔 기간에 고착되어 더 이상 자라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체적으로는 어른이 되어서 나이가 30 40 50대가 되었지만 섹스 자아는 3-5세로 자라나지 않고 멈추어버린 사람들이 아닌가? 그들은 자아의 성장이 중지된 사람들이다. 예를 들어서 노출증 환자는 어른이 되어서 정상적인 섹스 관계에서는 오르가즘적인 만족이 없고 자신의 성기를 성인 여성들 앞으로 보여줌으로써 여성들을 깜짝 놀라게 해서 비명을 지를 때 비로소 오르가즘을 얻고 자신의 그 순간에 성인이 된 것을 느끼는 변태성욕자이다. 페도필이아(소아 기호증)는 음모가 없는 어린이들의 음부를 보면 즉각 흥분을 하고 섹스 욕구가 치솟아 올라가서 어린이들을 섹스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 성폭행범죄자들이다. 그들은 건강한 성인 여성들에게는 섹스 욕구가 사라져서 오르가즘으로 연결되지 않는 사람들이다. 섹스 자아 뿐만 아니라 어떤 부분의 자아의 일부가 어린 시절의 상처를 받아서 그 시쯤에서 멈추어버린 사람들이 바로 심리적인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다.

변태성욕자들 뿐만 아니라 심각한 심리적인 문제들을 가진 사람들은 심리적인 위기 때 걸맞은 자아가 잘 발달해서 위기들을 잘 대응해 나갈 수가 없는 경우에는 신체적 자아로써 몸으로 위기들을 컨트롤하려는 사람들로써 그들은 부족한 자아의 기능을 몸으로 대신하고 있는 사람들이 각종 심각한 증세들을 가지고 자아를 보호하려고 하는 사람들로써 그들은 위기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충분한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신분석 치료에서는 이들을 몸으로 대처하지 말고 자아를 성장시켜서 몸으로 하는 증세들 대신에 자아로 대처하는 능력을 개발하게 함으로써 그 증세는 더 이상 불필요하게 되면 그 증세가 사라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고로 정신분석 심리치료에서는 증세 자체를 다루지 않고 자아를 다룬다는 점이 일반 다른 심리치료들과 다른 점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신체적 자아가 자아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신체적 자아 대신에 심리적인 자아로 발달을 재개 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고로 치료는 그 자아가 성장이 중지된 고착 지점을 분석으로 찾아내고 그 시점에서 자아의 발달을 재개해서 나이에 걸맞은 자아로 성장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정신분석 심리치료는 심인성질환자들에게도 적용이 되어 좋은 치료 효과를 올리고 있다. 심인성질환 환자들은 심리적인 위기들을 대처할 자아의 충분한 발달의 미흡으로 몸으로 위기를 대신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대표적인 증세들이 비염, 아토피, 천식 그리고 두통, 십이지궤양, 과민성 대장염, 루마치스 관절염 등의 실제 신체적인 질병들이 각종 스트레스 시에 자아의 대처 기능의 결함과 부족으로 신체적으로 몸으로 대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래에서 소개되는 사람들은 치료자로부터 장기간 심리치료를 받았던 사람들로써 그들의 증세들이 자아의 미성숙함 때문에 몸으로 스트레스를 막고 있는 사람들로써 자아의 소멸과 자아 해체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다양한 여러 가지 증세로써 자아를 방어하고 있는 사람들로써 자신들은 정작 자아의 그러한 속임수를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치료자에게 4년 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 한 27세의 청년은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 사이에서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자아 해체, 자아 소멸의 죽음을 몸으로 증세로써 자아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 분석의 과정에서 밝혀졌다. 그는 부모님의 맞벌이로 3-4세에 1년 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그리고 아버지의 사망 이전에 이미 부모님이 C군의 자아를 안전하게 보호해주지 못한 여러 개의 사건들이 분석으로 밝혀지면서 스스로 자아 보호를 위해서 방어 막으로 증세들을 동원해서 신체적 자아를 사용하게 되었음이 밝혀졌다

 

 

대상: 군복무 후에 복학을 준비하는 대학생 C

증세: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구취증,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소변이 너무 잦아서 스스로 빈뇨 증(구취증, 빈뇨증은 C군이 스스로 붙인 이름)

접촉: 어떤 학자가 쓴 "심인성 질환"이라는 서적에 감동되어 자신의 문제점이 심인성 질환으로 확신하고 인터넷에서 치료자심인성질환 홈페이지를 접하고 전화로 치료 문의를 해 왔음

진단: 심한 불안증, 대인 공포증, 대인 기피증(회피적 성격장애), 뇨도 감염 강박증

치료 기간: 10 6개월 계약을 하고 지금은 제 1 2 시간( 217 회 총 434시간)의 치료 회기로 열심히 치료를 해 나가고 있음

치료 결과: C군은 이번 주일에 5월달 말까지만 일을 하고 일을 그만 두겠다고 사장에게 통고를 했고 사장은 왜 일을 그만두려고 하느나?라고 질문을 했을 때 정규직 일자리를 젊었을 때 찾아야 하겠다고 이야기를 했고 사장이 승낙을 했다고 했다. C군은 xx 회사의 기술직 사원 모집에 응시 원서를 준비중이라고 했다. 그는 작년에 은행 보안원을 6개월했고 올해에는 음향기기 사업체에 8.5개월을 일을 하고 그만두는데 작년보다 2.5개월을 많이 한 것 그리고 작년 12월 이후에는 비뇨기과의 뇨도 감염 검사를 6개월 정도 받지 않고 있는 것 그리고 이번 감기에 크게 앓아눕지 않는 것 등등이 자아의 감각이 많이 향상되고 불안이 감소되어 면역 기능이 증가된 증거로 지적을 했을 때 동의를 함

치료의 과정   

 이번 주일 치료 회기에서 C군은 xx 회사에 응모는 서류 심사에서 불합격되어서 다른 곳을 알아 보고 있는데 국가에서 3개월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도 1달로 줄어들었다고 했다. 한번 알아보고 3개월짜리가 있는지? 한번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 이외에는 특별한 일이 없다고 했다.

 아직도 후임은 광고를 내고 약 10명의 지원자가 있었지만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주일에는 채용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 보고 찾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C군은 인터넷에서 모임을 하는 까페에 나가려고 하는데 그들의 함께 했을 때 자신의 내면의 단점들을 얼마나 밝혀야 하는가?를 모르겠다고 했다. 치료자는 그 상황에 맞추어서 적당하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이 좋다고 했다. 단점을 밝히면 숨기는 것이 없기 때문에 긴장이 줄어 들고 불편함이 줄어들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시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아버지의 죽음 이전에 C군이 아버지가 굴비를 구워서 밥 숫갈 위에 찢어서 C군에게 먹여주었는데 C군이 메스꺼움으로 구토를 하려고 하자 인상을 쓰면서 본채만체하면서 엄마에게 가 보아라라고 해서 슈퍼마겟을 하고 있는 어머니에게 갔을 때 어머니는 소화제인 훼스탈을 먹어보라고 했으나 C군이 반대하자 같이 길거리를 걸어 보라고 해서 걷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집으로 되돌아와서 화장실에서 구토를 해도 아버지를 달려와서 도와주지 않았고 못 본체하고 누워서 TV만 보고 있었다고 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문제 해결을 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고 결국은 C군은 혼자서 그 문제를 했고 감정표현을 의사 소통을 배우지 못한 것이 분석으로 드러났다.

 이것에 대한 감정을 표현해 보기로 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내가 구토를 하려고 했을 때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방치를 했습니다. 모르는데 못 본체 했습니다. 자식이 고통을 당하고 있으면 재 빨리 뛰어와서 등을 두드려 주든지 배를 쓰다듬어 주든지 혹은 배를 쓸어 주면서 등을 도닥거려 주든지? 했어야 했는데 아버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해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구토를 하면서도 아버지이 눈치, 비위리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달래주고 위로해주고 나를 보살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러한 위급한 위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버지로부터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삶에서 위기 시에 내 감정을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하는지? 내가 어떻게 긴장을 해소해야 하는지?를 몰랐습니다. 모든 문제를 내 혼자서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고로 나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에 어떻게 내가 긴장과 두려움을 해소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그냥 참고 견디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그러한 위기 시에 나를 달래주고 보살펴주는 경험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치료자는 아버지에 서운한 감정을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해보기로 했을 때 C군은 그 당시에 아버제에 대한 서운함을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버지의 잘못을 어머니에게 고자실하는 것으로 나쁜 행동으로 생각을 했다고 털어 놓았다. 9 살 먹은 어린이가 그 때 이미 아버지의 잘못을 어머니에게 하소원을 해서 아버지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어머니에게 호소하는 것을 고자질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 이전에 이미 그러한 경험이 머리 속에 입력이 되었다라는 말이 아닌가?를 지적을 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나쁜 사람입니다. 나는 아버지가 싫어졌습니다. 내가 구토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아버지는 달려와서 내 등을 도닥거려주거나 내 배를 쓰다음어 주거나 혹은 나를 위로해 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아버지가 야단을 치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아버지의 눈치, 비위에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데 아버지를 못 본 척 했습니다. 고로 나는 삶에서 어떤 위기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우지 못했습니다. 나는 내가 참고 견디는 것 밖에 배우지 못했습니다. 내 마음 속에 긴장을 어떻게 다스리는지?를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억울합니다.

 이번에는 서운한 감정을 어머니에게 표현을 해 보도록 했다.

 어머니! 내가 어머니에게 메쓰워서 토하고 싶다고 해서 달려갔을 때 어머니도 나에게 어떻게 내가 위기를 극복하고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냥 되돌려 보냈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무도 나를 위로해주고 위기를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내가 부모님으로부터 위기를 극복하는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나는 전전긍긍하면서 결국은 내 혼자서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내 위기를 위로받거나 달램을 받거나 문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고로 나는 삶에서 위험을 어떻게 해서 내 자아를 달래고 어떻게 내가 긴장과 감정을 방출하는가? 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냥 참고 할 수 있는데로 견디를 것 밖에 베우지 못한 것입니다. 억울합니다. 다른 가족들은 서로 소통을 하면서 서로 위로해주고 달래주고 도닥거려주는 것을 배우는데 나는 그러한 공감과 위기 극복 능력을 전혀 부모님으로부터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내 자아에게 그 당시에 9살의 어린이가 위기를 맞이 해서 꽁꽁 얼어붙어서 아버지로부터 혹은 어머니로부터 문제 해결을 배우지 못하고 혼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그 자아에게 어른이 된 자아가 이야기를 해 보도록 했다.

 xx! 9살 된 네가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어머니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너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너는 어떻게 불안을 하소연하는가? 어떻게 너의 공포, 두려움을 방출시키는가?를 배우지 못하고 모든 것을 혼자서 참고 견디는 것만 배웠기 때문에 아버지의 사망 이후에 너는 참고 배우는 것만 배워서 아무에게도 어머니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이야기를 해서 너의 고통을 방출하고 긴장을 풀어 내는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너는 혼자서 꽁꽁 얼어붙어서 입을 다물고 전전긍긍하는 것만 배웠기 때문에 그의 긴장과 두려움과 불안은 일반 건강한 사람들에 비해서 1만배나 더 심하게 고통을 받게 된 것이다(1만배는 C군이 보통 사람들보다 자신의 긴장의 정도가 1만배나 높다고 표현).

 C군은 최근에 와서 그러한 감정을 표현하고 긴장을 하소연하고 말로써 느낌들을 표현을 하는 능력에 치료자가 깜짝 놀랄 정도로 잘 표현을 하고 있다고 치료자가 칭찬을 해 주었다.

 두 번째 이벤트를 재연해보기로 했다. 인근에 살고 있는 두 명의 친구들 중에 한 사람의 남동생이 C군의 집의 도어 벨을 누르고 도망가는 장난을 치는 바람에 그에게 하지 말라고 야간을 쳤는데 그가 그의 형인 C군의 친구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 친구가 C군에게 항의를 하다가 서로 몸싸움을 했는데 그 친구가 그의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해서 그의 어머니가 C군에게 전화로 항의를 했는데 C군은 자신의 억울함을 이야기를 하면서 울면서 전화를 받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도 TV만 보고 누워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것을 그 때의 9살날 자아가 분노, 짜증, 공표와 억울함을 말로써 표현을 하는 재연을 해 보도록 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야단을 받고 공격을 받고 위기에 처해서 울면서 전화를 받는 것을 보면서도 아버지는 못 본 체 했습니다. 자식이 위험에 처해서 억울함에 처해서 울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달래주거나 위로해 주거나 도닥거려주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나는 누구에게도 내 억울함을 이야기를 하고 하소연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내 분노, 짜증, 화를 표현을 해해할지 못하고 나는 그냥 참고 내 혼자서 그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무관심과 반응이 없는 억울함을 하소연을 해 보도록 했다.

 어머니! 나는 아버지가 미워요! 내 친구의 어머니가 나를 야단치면서 내가 잘못하지 않는 것을 전화로 질책을 하면서 호통을 내가 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아버지는 TV만 보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른이 아니고 9살 먹은 어린이인데 나에게 어떻게 내 감정을 표현하고 화를 표현하고 내가 내 자신을 달래주는 것을 나는 아버지로부터 배우지 못했습니다.

 내 자신의 9살 날 자아에게 이야기를 해 보도록 했다.

 xx! 너는 그러한 억울함을 어머니에게도 호소를 하지 못했다. 너는 어린 시절부터 어떻게 화, 분노, 짜증, 공포, 두려움, 불안 들을 방출하는지? 말로써 표현을 하는지?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스스로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참고 견디고 입을 다물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을 부모님 한데서 배우지 못했다. 고로 너는 아버지의 사망 이후에 죽음의 공포를 표현하지 못하고 참았기 때문에 너의 신체적 자아가 그 문제를 해결을 해야 했다. 고로 너는 침을 삼키지 못하고 뱉어내고 그리고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긴장이 1만배나 높아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치료자는 C군의 친구의 가족을 보도록 했다. 동생이 C군에게 호된 야단을 맞았을 때 그 친구는 그의 형님에게 이야기를 했고 그 형님이 C군에게 항의를 하다가 불만족하니까 그의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해서 어머니가 C군에게 항의 전화를 하는 친구의 가족들의 소통 방식과 C군의 가족의 소통 방식을 비교해 보면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해 보도록 했다.

 아버지!, 어머니! 내 친구의 가족을 보세요. 그들은 남동생이 화가 났을 때 형님에게 하소연을 하고 그 형님이 해결하지 못했을 때 그의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해서 서로 소통을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해도 무감각하고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해도 반응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어린 시절에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고통, 위기, 두려움, 공포, 불안 들을 부모님에게 호소하고 말로써 표현을 하고 그 결과 의사 소통을 배우고 긴장을 방출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무조건 참고 입을 다물고 견디는 것 밖에 다른 방법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9살 난 그 어린이는 긴장된 마음, 불안한 마음, 그리고 화, 짜증을 말로써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아로써 막으려고 하지 않고 몸으로써 막으려고 했습니다. 입을 다물고 참고 견디는 것과 그리고 긴장을 참고 견디는 것이 그 시점에서 이미 형성되어져 있었습니다. 고로 아버지의 사망 이후에 아무에게도 그 이유를 물어 보지 못하고 불안, 두려움, 긴장을 9살 난 어린이가 스스로 참고 입을 다물고 견디는 것 때문에 1만배의 긴장이 쌓인 것입니다. 자아소멸, 자아 해체를 죽음의 공포를 입 밖으로 토해내지 못해서 독약, 죽음을 막기 위해서 내 몸으로 막아야 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C군은 지금까지 5년간 심리치료를 받고 있으면서 한번도 어머니가 치료자에게 와서 아들 C군의 치료 상황과 진행과정과 어머니의 도움을 요청하지 못했고 그리고 C군이 어머니에게 C군의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치료자를 만나도록 하지고 이야기를 했을 때 절대로 어머니를 치료자와 만나서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고 지금까지 반대를 해 왔는데 오늘 치료 회기 말미에 어머니가 치료자를 방문하도록 허용하겠다고 처음으로 이야기를 했다.

 C군이 어머니를 방문해도 좋다는 허용을 한 것은 C군 자신의 심리적 고통을 심리치료 5년이 지나가는 지금이 시점에서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하겠다는 것은 C군의 마음이 열린 증거이고 치료에서 그 만큼 좋아졌다는 의미라고 칭찬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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