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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치(Couch)에 누워서 정신분석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분석가와 분석을 받는 사람

 

 자아 해체, 자아 소멸(자아 장애 치료) 2

 

자아(self)라는 말은 20세기 중반기에 등장을 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창설했을 당시에는 자아(self)라는 말 대신에 라는 말로 ego를 사용을 했다(영어 사전에는 ego self는 둘 다 자아, 나로 번역).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Vienna – 영어로는 비엔나 독일어로는 빈) 출신으로 그는 독일어를 사용해서 정신분석학을 썼다. 그런데 영국 출신의 제임즈 스트라취(James Strachey)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소개 받고 정신분석을 공부하기 위해서 오스트리아에 와서 프로이트 밑에서 2년 동안 공부를 한 후에 영국으로 돌아가서 프로이트의 독일어로 된 정신분석의 모든 논문과 서적들을 프로이트의 허락을 받아서 영어로 번역을 하게 되었다.

제임즈 스트라취는 정신분석 자격증을 얻어서 영국에서 정신분석 학교를 세우고 수 많은 정신분석가들을 배출하게 된다. 그의 지도를 11년 동안 받아서 세계적인 정신분석가가 된 도날드 위니코트(Donald Winnicott)가 있다. 죠안 리비에는 프로이트의 전기를 쓴 영국인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인 어네스트 존(Ernest Jones)한데서 수학을 받은 초대 여성 분석가로 그녀의 뒤를 이어서 영국에서 초반기 5명의 여성 정신분석가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죠안 리비에(Joan Riviere), 마가렛트 리들(Margaret Little), 슈잔 이삭(Susan Isaacs), 폴러 헤이만(Faula Heisman), 실비아 페인(Sylvia Payne) 등이 그들이다. 죠안 리비에는 그녀의 스승인 어네스트 존을 설득해서 비엔나에서 처음으로 소아 정신분석을 개발하고 있던 메라니 크레인(Melanie Klein)을 영국으로 초대해서 영국에서 대상관계 이론을 창립하는 공적을 남기게 한 장본인이다. 폴라 헤이만은 1950년에 정신분석 역사상 최초로 반전이 논문을 발표한 여성 분석가이고 1951년에 마가레트 리틀이 이어서 반전이 논문을 발표해서 반전이의 연구의 길을 열어 준 공헌자들이다. 실비아 페인은 소아 정신분석의 초반기 시점에서 프로이트의 막내 딸 안나 프로이트와 메라니 크레인 사이에 이론적 갈등으로 영국에서 정신분석이 두 개의 학파로 나누어지게 되자 실비아 페인이 1944년에 두 사람을 설득해서 서로 화해를 하도록 하는 신사 협정을 채결하도록 중재 역할을 한 장본인이다(Ellenberger, 1970).

제임즈 스트라취는 프로이트가 독일어로 쓴 나(I)를 영어로 번역할 만한 적당한 말이 없어서 그는 자아를 ego라는 말로 그리고 독일어로 그것(its)이라는 말을 원초자아인 id로 번역을 했다. 그래서 프로이트의 마음을 이끌고 가는 3두 마차로써 자아(ego), 원초자아(id), 초자아(superego)라는 말이 처음으로 탄생하게 되었다(독일어에는 ego, id, superego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음).

그런데 오스트리아가 제 2차 세계대전 직전에 독일에 의해서 점령 당하게 됨으로써 유태인들의 박해가 시작되면서 유태인이었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금지되고 폐기되고 그리고 프로이트는 영국에서 제자들 즉 제임즈 스트라취와 어네스트 존(Ernest Jones) 등의 초대를 받아서 독일 통치의 오스트리아에서 1938 6월에 추방되어 영국으로 건너갔다. 나치의 박해로 수 많은 유럽의 정신분석가들이 대거 미국으로 남 아메리카 등으로 세계적으로 흩어져서 정신분석의 복음의 씨앗이 된 것은 널이 알려져 있는 일화이다.

2 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의 패배로 영국과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게 되면서 이후에 독일어로 된 정신분석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독일어의 정신분석이 영어로 된 번역판이 정신분석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되었다. 20세기 후반기에 독일에서 정신분석을 연구하고 치료를 하는 학자들은 영어의 정신분석의 원본을 다시 독일어로 번역해서 사용하는 모순적인 일들이 벌어졌다(Ellenberger, 1970). 참고로 독일에서는 융(Jung)의 분석 심리학이 발전한 반면에 정신분석학이 취약하고 미미하다는 점이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영국에서 대가들이 쏟아져 나왔고 미국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는 정신분석학자들이 양적으로는 많지만 대상관계 이론(크레인과 페비안), 애착이론(존 볼비(John Bowlby), 안아주기 이론(위니코트), 충격흡수(비용(Bion) 등이 모두 영국인이 아닌가! 이것은 프로이트가 영국에 뿌린 씨앗의 결과이고 영국인들이 프로이트의 새로운 이론을 수용해서 발전시킨 공로를 말해주고 있다.

다시 자아 해체, 자아 소멸의 제목으로 되돌아가 보자.

정신분석에서 자아(self)라는 용어가 프로이트의 ego와 혼란이 생기게 되면서 정신분석가인 하트만(Hartmann) ego는 마음의 삼두마차에서 행정 기능을 담당하는 자아로 정의를 하게 되면서 여기에다 프로이트의 막내 딸인 안나 프로이드(Anna Freud)가 정신분석을 이어받게 되면서 1938년에 “ego의 방어기재라는 저서로써 ego의 힘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새로운 ego 중심의 학문인 ego 심리학이 새로 탄생하게 되었다. Ego의 자아(self) 보호 기능인 방어 기재들, 적응기능들, 학습 기능들, 조정 기능들,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는 기능들 등이 하나씩 첨가되어지면서 프로이트의 생물학적인 본능 이론의 정신분석이 이후에는 프로이트의 마음의 구조 이론의 등장으로 욕구 이론들에 바탕을 둔 원초자아 심리학에서 ego 심리학으로 형태가 바뀌게 된다. 영국의 정신분석가인 하트만이 자아라는 말의 self는 나와 너의 구분을 하는 용어로 영어에서 self 혹은 subject인 나로 그리고 너, 대상이라는 말로써 영어로 object라는 말로 구분으로 정의가 되어지면서 이후에는 ego(마음의 기능) self(너와 반대로 전체 내 경험인 나)가 명확하게 구분되어지게 되었다.

이후에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가로 미국에 이민을 간 코호트(Kohut)에 의해서 자아 심리학(self psychology)(아래에서 상세히 설명 참조)이 새롭게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 프로이트가 창설한 정신분석학이 정통파 정신분석학, ego 심리학, 그리고 자아 심리학으로 세분화 되어졌고 그리고 여기에 생리 심리학과 인본주의 심리학(프로이트의 환자 치료 심리학에 대한 반대로썬 건강한 인간 중심의 심리학인 인본주의 심리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더 붙여서 실험실에서 과학을 표방하면서 등장한 행동 심리학인 실험 심리학 등이 심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치료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다.

다시 정신분석학으로 되돌아가 보자.

프로이트(Freud, 1924)는 그의 논문 신경증와 정신증(1924)”“신경증과 정신증 안에서 현실의 상실(1924)”에서 신경증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과학적인 원리 즉 물리 화학적인 이론으로 설명을 하고 있다. 즉 신경증은 마음의 삼두마차인 ego가 마음의 전체를 컨트롤하고 있지만 본능적 욕구들을 담당하고 있는 원초자아가 불평 불만으로 반기를 들고 반항을 하고 있는 것으로 신경증을 정의를 했다. 그러나 ego는 마음의 전체를 잘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에서 갈등과 어려움이 있지만 나를 대표 하는 전체적인 나인 자아(self)는 흔들리지 않고 현실 감각은 분명한 것을 신경증으로 정의를 했다(Stolorow, Atwood & Orange, 1993, 2002).

 대조적으로 정신증은 ego의 힘이 약해진 틈을 따서 원초자아가 평소에 욕구 불만족에 대한 불평과 불만 그리고 과도하게 욕구들을 억압하고 있는 ego의 컨트롤에 항의와 도전으로 ego의 컨트롤을 벗어나서 자아(self)를 마음대로 컨트롤하고 있고 그리고 더욱 더 나아가서 원초자아가 자신이 마음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서(망상들)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지게 된 것을 정신증으로 정의를 했다. 따라서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꿈이 현실로 대체되어져 버린 사람들이다.

 프로이트의 위와 같은 신경증과 정신증의 정의는 신경증 치료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많은 정신분석가들에 의해서 정신분석이 정신분열증의 치료와 성격장애의 치료와 자폐증의 치료 등으로 확대되어지면서 신경증과 정신증의 정의는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프로이트의 좁은 의미의 정의는 정신증의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1938년에 미국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아돌프 스턴(Adolph Stern)이 신경증 환자들을 치료를 하면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공통점을 가진 새로운 신경증 환자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은 현실 감각을 상실하고 늘 익숙한 환경들이 낯설게 보이고 현기증이 나고 자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메스꺼움과 구토가 나면서 휘청거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한결 같이 자신이 아닌 것같이 느껴진다고 호소를 했다.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고 늘 익숙했던 현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며 자아가 없는 자아 소멸 혹은 자아 상실감을 느낀다고 호소를 하는 사람들로써 그들은 현실 감각을 완전히 상실한 정신분열증 환자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분명히 현실 검증 기능은 연약하지만 가지고 있었다. 고로 정신분열증은 아니었다(Wolf, 1988).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인 장 볼 싸르트르(Jean Paul Sartre)가 쓴 구토라는 작품의 주인공이 방향 감각 상실과 자아 상실의 이야기들이 기술되어졌다. 구토라는 작품의 주인공은 그가 늘 가던 카페가 이상하게 낯설게 보이고 늘 보는 익숙한 사람들이 낯선 사람으로 그들이 자신을 돌 아이로 보고 있다는 것으로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더 붙여서 세상이 빙빙 도는 것처럼 느껴져서 현기증이 나고 메스꺼움과 구토를 느끼면서 갑자기 돌 아이가 되어버린 것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완전이 돌아버린 정신분열증은 아니었다. Ego가 연약해져서 자신감이 없어진 것은 분명했다. 세상이 이상하게 변해버린 것으로 보이고 자신이 이상하게 변해버린 것으로 느껴졌다(Wolf, 1988).

 신경증 보다 심각하지만 분명히 정신증은 아닌 중간 지역에 해당한다고 해서 이들을 보드라인(신경증과 정신증의 중간 지역인 그들의 경계선이 있다는 우리나라말로 경계선 장애) 장애로 부르는 학자들도 있고 또 일부 학자들은 자아 해체, 자아 소멸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자아 장애로 부르는 학자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다.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자 정신분석 학자인 건더슨(Gunderson)은 성격자애들을 체계적으로 분류를 해서 1980년에 3번째로 수정 보완이 된 미국 정신 의학 학회에서 발간하는 DSM-(정신장애에 대한 통계와 분류 지침서의 약자)의 축Ⅱ의 성격장애 파트에서 12개의 성격장애들의 정리를 한 장본인이다. 그는 이들을 성격장애자들을 분류를 하면서도 이들은 21세기에는 자아 장애자로 통합해서 불러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여기에서 등장한 사람들처럼 최근에 치료자 한데서 심리치료를 받게 된 사람들도 비슷한 증세들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A씨는 심한 우울증으로 7년 동안 우리나라의 최고 명문 의과 대학 교수로부터 처방된 약물 복용을 해 오고 있지만 증세의 차이들은 변화가 거의 없었다고 호소를 했다. 자신의 말대로 한 움큼의 약물을 복용하고 있지만 우울증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하루하루 사는 것이 고문이라고 주장을 했다. 그는 모닝 승용차를 몰고 다니면서 과도하게 과속으로 추월 경쟁을 하고 경적을 울리는 운전자들을 추적해서 보복을 했다. 마스크를 쓰고 각목으로 누구든지 걸리면 죽여버리겠다고 걸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은 묻지마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냉소적인 미소를 보였다. 그는 언어 폭력과 과도한 일 중독으로 부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자살하고 싶다고 했다. 살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그는 라스베가스 도박장에 가서 몇 만 달러를 잃었고 그리고 이름 있는 국내 도박장에서 3백 만원의 돈을 잃고 매춘부에 사기 당해서 1200만원을 날려버리고 지금은 빚이 2억이 된다고 호소를 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돌 아이로 본다고 두려워해서 낮에는 밖에 잘 나가지 않고 집에만 갇혀 있게 되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는 전처의 소개로 치료자를 찾아와서 약 350시간의 치료를 받아서( 4년 기간) 자신의 말대로 완치에서 약 2%의 부족을 남겨 놓고 있다고 스스로 고백을 했다.

 두 번째로 B씨는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 초에 자동차 사고로 아버지를 여읜 후에 그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누가 입에 독약을 넣을 것이라고 두려워해서 입을 다물고 침을 삼키지 않고 뱉어내면서 다녔다. 그는 머리 속에 죽음의 공포 때문에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음식을 잘못 먹게 되면 죽을 것이라고 두려워해서 쇠고기 돼지고기 등의 질긴 음식들과 닭고기와 생선고기들을 먹지 않아서 몸무게게 14kg이 감소되어 해골처럼 되었다고 했다. 그는 음식을 먹어도 소화 기관이 부실해서 소화가 되지 않아서 매일 저녁에 소화제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했다. 다행히도 중 2, 3학년 시점에서 식사를 할 때 음식을 100번 씹어 먹는 것을 4년 동안 반복하면서 소화기관은 회복이 되었고 몸무게도 정상으로 되돌아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뇨도 감염의 공포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소에서 소변의 배출을 확인을 하는 강박증으로 대체 되었다. 그는 3개월에 한번씩 비뇨기 과에 가서 약물과 검진으로 뇨도 감염 강박증의 감염 검진을 받고 있다가 치료자에게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5년 째 받고 있다.

C씨는 작년에 29세로 대학을 졸업을 했는데 정상인들의 두 배의 기간이 걸려서 졸업을 하고도 그 이후에 두문불출해서 외주에서 일거리를 받아서 부분적으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을 할 때 시작을 할 수 없다고 호소를 했다. 출발을 할 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미루다가 결국은 데드라인에 갇혀서 죽기살기로 일을 하게 된다고 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고 죽지 못해서 하는 일로써 자신의 전공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호소를 했다. 그는 잡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했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매일 밤마다 뒹굴면서 잠을 자는데 피곤하고 숙면을 취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신경정신과 약물을 복용해 보았으나 도움이 되지 않아서 포기 했다고 했다. 심리 상담을 4개월간 받다가 실망해서 그만 두고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해서 정신과 서적들을 뒤적이게 되었다고 하소연을 했다. 소화 기능이 말을 듣지 않아서 늘 위와 장의 약물을 달고 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6개월 째 받고 있다.

D씨는 자신의 자아가 있는지를 모르고 살아온 사람으로 그는 부모님 특별히 어머니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분석으로 밝혀졌다. 그는 고교 시절의 야간 자습 후에 10-11시 경에 집에 돌아왔을 때 잠들어 자고 있는 어머니의 목을 졸라 죽이거나 혹은 수건으로 어머니의 입을 막아 줄이려고 6개월이나 계획을 세웠으나 실천은 하지 못했고 자살 직전에 치료자의 저서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본 자아의 성장과 발달)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구입해서 읽고 치료자에게 심리치료를 받으러 와서 10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아서 자아를 회복해 가고 있는 사람이다.

E씨는 27세의 나이로 5년간 정신병원에 3번이나 입원을 했던 학생으로 그는 이름 있는 명문 대학에 입학을 했으나 4번이나 입학과 휴학을 되풀이 해 오다가 스스로 자퇴를 한 사람으로 군에 입대해서 조울증과 정신분열증으로 입대 3개월 만에 의병 제대로 되돌아와서 사회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학생이었다. 정신과 의사들의 약물 처방에 실패로 한의사에게 약 4개월간 침술 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역시 실패 했고 심리상담 치료를 3개월간 받아 보았으나 효과를 보지 못하고 다양한 민간요법 혹은 기도원에서 여러 번 기도 프로그램에 참가했다가 실패한 사람으로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홈 페이지를 보고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요청해서 40 시간의 치료 과정에서 올해 3월 달에 xx 대학에 복학하여 중간 고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게 되었다고 처음으로 2010년에 대학 입학 후에 첫 중간고사를 성공적으로 통과하게 되었다고 기뻐하면서 왕복 7시간의 통근 거리에 2시간의 분석 치료를 받기 위해서 열심히 분석을 받고 있는 사람이다.

F양은 29세의 여성으로 5년 만에 2번이나 정신병원에서 3개월과 2개월을 보낸 아가씨로써 그녀는 약물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호소를 했다. 그녀는 남자 친구가 그녀의 나체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서 그녀를 협박하고 그녀에게 돈을 보내라고 공갈 협박을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그들을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노발대발했다(치료자와 분석에서 망상임이 밝혀졌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 xx 회사에서 6개월간 비서 직으로 일을 하다가 그만둔 이후로는 5년간 제대로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사회생활이 안됨). 그녀는 부모님과 갈등으로 2년 전에 가출을 해서 3개월간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작년 9월 달에 정신병원에서 2개월 입원 후에 2주일간 가출을 했다가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서 치료자에게 소개되어 8개월간 정신분석 심리치료를 성공적으로 받고 있다. 그녀는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서도 지금은 일자리를 구해서 일을 하고 있고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삶을 계획하고 있다.

이들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신경정신과에서 약물 치료의 실패로 그 다음에 한의사에게 치료를 받아 보았으나 효과가 없어서 마지막으로 치료자를 찾아오는 자아 해체의 위협과 자아 소멸의 위협 때문에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의 대리만족으로 살고 있다고 호소를 하고 있었다. 자아가 죽어가는 삶, 자아가 죽어버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치료자를 찾아 왔다고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위와 같은 자아 해체, 자아 소멸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의 장기간 정신분석 치료(정신분석에서 신경증 환자는 최하 3-최고 5년이 평균)에서 치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치료 답보 상태(치료가 진전이 없는 제자리 걸음)가 계속되고 반전이 가 빈번하게 등장하게 되면서 새로운 정신분석 치료 기법으로 영국에서 시작된 대상관계 이론과 그리고 대인관계 정신분석 이론 그리고 자아 심리학이 주축이 되어서 그들을 바탕으로 한 새롭게 등장한 상호주관적 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치료기법이 등장을 했다(Stolorow, Atwood & Orange, 1993, 2002).

예일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의 타비스톡(Tavistock) 정신분석 치료센터에서 1년간 조교수로써 분석 치료를 하고 돌아와서 캘리포니아 주립 샌프란시스코 의과대학(미국에서 유일하게 종합 대학의 의과대학이 아닌 독립된 의과대학 하나만으로 된 의과대학) 정신과 의사로써 정신분석학자인 토마스 오가덴(Thomas Ogden) UCLA 의과대학의 정신분석학자인 스톨로우(Stolorow)가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같은 상호주관적 정신분석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만 전자는 후자와 달리 제 3의 분석 혹은 제 3의 주체라는 말로써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상호주관적 정신분석이라는 말은 프로이트가 마음을 고립시켜서 한 사람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설명을 함으로써 신경증 치료 이론으로 개발을 한 것에 대조적으로 정신분열증, 자폐증, 심한 성격장애 등의 환자들은 한 사람의 심리학이 아닌 두 사람의 심리학적인 정신분석 이론으로 설명되고 치료되어져야 효과적인 치료가 될 수 있다는 것에서 출발을 했다. 일찍이 니체가 네가 심연(깊은 물속)을 쳐다 보고 있을 때 그 심연 역시 너를 처다 보고 있다는 철학적인 용어에서 확대되어 치료를 하는 분석가는 치료를 받고 있는 분석을 받는 사람을 치료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관찰자인 분석가 역사 분석을 받는 환자로부터 관찰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아와 양육자는 돌봄을 받고 있지만 역시 돌봄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와 너는 관계를 하고 있지만 서로 상대적이 아닌가? 의식과 무의식은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따로 때어내어서 독단적으로 분리해서 다루어질 수가 없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고로 정신분석 치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전이와 반전이 는 서로 쌍방 관계로써 전체로써 보아야 하지 따로 떼어서 한가지로써 만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Stolorow, Atwood & Orange, 1993, 2002).

위와 같은 상호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너와 나의 관계로 형성된 그 교집합적인 공통 부분은 한 사람의 주관이 아닌 공동으로 생산된 새로운 주관으로 이것을 제 3의 주체 혹은 제 3의 분석이라고 오가덴은 부르고 있다. 대조적으로 스톨로우는 유아와 양육자와 상호주관적인 세계에서 우리의 머리 속에 입력되어진 세상의 경험이 주관적인 경험으로 이 경험의 집합이 나의 경험의 세계로써 우리의 개인의 경험이 세상의 경험이고 세상의 경험이 내 개인의 경험이기 때문에 서로 쌍방적이고 상호관계에서 분리 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로 자아의 죽음, 자아의 소멸, 자아의 해체를 느끼는 사람들은 유아기 시절부터 양육자 그리고 그 이후에 관계를 했던 사람들과의 쌍방 관계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수용되어지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과 느낌들의 타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양육자 혹은 관계자들에게 부응하고 복종해서 정작 자신의 자아가 없는 사람들로 보게 된다. 고로 자아의 경험의 죽음은 세상의 경험의 죽음으로 느껴지게 된다. 자아의 소멸 직전에 가버린 사람들은 이미 그가 살아온 세상의 경험들이 서로 연결이 끊어지고 응집력이 약화되어 산산조각이 난 것으로 자아 심리학자인 코호트(Kohut)가 자아 심리학에서 강조한 부분을 중요시 하고 있다. 세상의 경험들이 그 개인의 내면 세계의 경험들로써 잘 통합이 되고 잘 규제되고 잘 컨트롤 되면 자아 응집력이 강하고 그 결과 자신감이 높아지고 ego의 힘이 강하게 되는데 반대로 심리적 상처들이 고통을 유발하기 때문에 관계들을 끊어버리게 되면서 서로 연결들이 끊어져서 해리 상황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자아 해체를 경험하고 있는 자아가 죽어가는 사람들이 극심한 단계로 이어져서 자아가 죽어버린 사람들이 정신분열증 혹은 자폐증 환자들이라고 본다(Stolorow, Atwood & Orange, 1993, 2002).

자아의 소멸은 세상의 소멸이 되어버린다. 고로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이상한 돌 아이라고 비웃고 조롱하고 멸시하고 천대한다고 생각이 되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자신이 보고 있는 그 세상은 이미 소멸로 가고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자신이 세상을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교묘한 자아는 자아 스스로가 자신은 이상이 없고 세상이 이상하게 변해버렸다고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아의 분열은 자신의 마음 속에 경험된 세계의 분열이고 소멸이다. 고로 그 경험들이 산산조각이 나서 서로 연결이 끊어져 있기 때문에 각각의 경험들이 뒤죽박죽으로 규제를 상실하고 제 마음대로 날뛰게 되면서 그 사람의 머리 속은 혼란해지고 생각들이 수 백배가 되어서 휴식을 취할 수가 없고 이 경험 저 경험에 끌려 다니는 처량한 소멸되고 죽어가는 자아가 되어버린 것이 쉽게 이해가 되어질 것이다. 프로이트는 일찍이 심리적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을 신체적 고통으로 바꾸어버린 사람들이 전환증이라는 신경증 환자들로 보았다, 다시 말해서 자아는 고통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고통들을 신체적인 고통으로 바꾸어버려서 신체적인 증세들로 마음의 에너지가 집중되어진 것이 오늘날 심인성 질환이 아닌가? 대표적인 심인성 질환으로 루마치스 관절염, 신경성 두통, 기관지 천식, 과민성 대장염, 위와 십이지장 궤양, 습진 피부염 그리고 최근에 등장하게 된 알레르기 반응 들 즉 아토피 피부염, 비염 등이 그들이다.

상호주관적 정신분석으로는 다음과 같은 증세들을 과거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쉽게 이해되어질 수 있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환청과 환각들이 이와 같은 관점에서 분석되어지고 치료되어지는 길을 열어 놓게 된 것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CIA, FBI의 요원들이 자신을 미행하고 감시를 당하고 있다고 하소연을 하는 환자들은 상호주관적인 정신분석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양육자로부터 감시와 감독으로 자유로운 자치심을 박탈당한 사람으로써 그들은 자아의 완전 소멸을 방어하기 위해서 ego가 편리하게 만들어낸 방어로 본다. 부모님 혹은 가족 구성원들(형님, 누나들)이 자신을 박탈하고 박해했다는 것보다 CIA, FBI 요원들이 자신을 미행하고 감시를 하고 자유를 박탈하고 자신의 노예로 만들었다고 말을 해야 살아남을 수가 있지 않는가! Ego의 무의식적인 교묘함을 보라! 얼마나 인간의 무의식이 교모한지!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거나 예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거나 혹은 성모 마리아라고 주장하는 정신분열증 환자들의 망상들은 신의 힘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즉 신의 말들은 누구든지 존경하고 존중하고 따르게 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로써 자신의 주장과 의견과 자신의 주체가 다른 사람들 한데서도 신의 명령, 가르침처럼 절대적으로 수용되어지고 인정되어졌으면 하는 그 사람의 소망을 반대로 상징적으로 표현을 한 것으로 본다. 평소에 그의 말과 행동은 누구에게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거부되고 무시되고 무가치하게 당한 모멸과 수치심과 무력감각이 만들어낸 자아의 보호막이 아닌가?

과대망상 환자들 즉 자신의 우수함과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인류를 위한 위대한 발명을 했다고 주장하는 망상증 환자들의 과대망상들은 자신의 재능을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써 그가 관계를 했던 사람들로부터 자신의 생각과 느낌들과 아이디어들이 수용되고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소망들이 자아의 보호를 위해서 만들어낸 상징적인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본다.

어떤 배우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고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에로틱 망상을 가진 환자들은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고 그가 좋아하는 러브 스토리를 실행하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상상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본다.

 위와 같은 환자들을 상호주관의 정신분석에서는 다시 어린 시절의 발달 단계로 되돌아 가서 잘못된 상호관계를 바로 잡아서 그들의 자아가 다시 정상적으로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바로 고치는 작업을 하는 것에서 정신분석의 치료가 시작되는 것이다.

 치료자는 위의 6명의 환자들을 보통 4(두 사람은 6개월과 8개월)에서 최고 10년 동안 치료를 받으면서 그들의 상처가 발생한 원점으로 되돌아가서 그들의 상처들을 재연하고 수정하고 수리를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5명의 환자들은 성공적으로 자아를 회복해 나가고 있는 치료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대상: 군복무 후에 복학을 준비하는 대학생 C군

증세: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구취증,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소변이 너무 잦아서 스스로 빈뇨 증(구취증, 빈뇨증은 C군이 스스로 붙인 이름)

접촉: 어떤 학자가 쓴 "심인성 질환"이라는 서적에 감동되어 자신의 문제점이 심인성 질환으로 확신하고 인터넷에서 치료자의 심인성질환 홈페이지를 접하고 전화로 치료 문의를 해 왔음

진단: 뇨도 강박증(심한 불안증), 편집증(독약 공포증), 자아 분열, 심인성 질환

치료 기간: 1회기에 2시간으로 6개월간의 치료 계약을 맺고 치료를 시작을 했음, 아래의 분석은 치료 제 8 회기로 16시간째의 치료 과정의 내용을 분석한 것이다.

 

치료의 과정

 치료자는 초반기에 C군의 증세들을 신체 기형 공포증이 아닌가?하는 궁금함을 가졌다. 그러나 치료의 과정에서 C군은 신체 기형 공포증이 아니고 심한 공포증으로 밝혀졌다.

 신체 기형 공포증은 환자가 특정한 신체 부위에 기형적인 생각으로 그 생각에 집착해서 빠져 나올 수가 없어 성형 수술을 하거나 신체 교정 수술을 끊임없이 실시해서 그 결과에 불만족해서 결국 정신 이상이 되는 정신분열증에 가까운 정신장애이다. 치료자는 미국에서 귀국에서 치료를 하고 연구를 하던 초반기에 어떤 여대생이 그녀의 항문에서 냄새가 난다는 증세로 정신분열증이 된 여성을 치료한 적이 있다. 물론 그녀의 항문에서 실제로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니고 그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녀는 어머니가 재혼해서 3명의 이복 동생들이 태어난 가정에서 자라 어린 시절에 상처들이 많았다. 그녀는 치료 비용이 없어서 몇 번의 치료로 치료를 중단한 안타까움이 아직도 기억이 남아 있다. 최근에 TV에서 "선풍기 아줌마"로 소개된 그 중년 여성이 바로 신체 기형 공포증으로 정신분열증이 된 사람이다. 그녀는 여러 번의 수술이 마음에 들지 않자 그녀 스스로 각종 약품을 얼굴에 주입해서 기형적인 얼굴로 변해 버린 이야기들이 TV의 전파를 탓고 어떤 의료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원래의 얼굴로 수술을 받으려고 하고 있다는 TV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C군의 증세들은 그가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에 올라가는 사이의 기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부터 문제가 시작 되었고 그 문제는 누가 그의 입에 독약을 넣을지 모른다는 심각한 두려움 때문에 그는 항상 입을 다물고 다녔고 이것은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어머니나 혹은 가까운 친척들이 그를 독살하려고 그의 입에 독약을 넣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입을 아예 다물어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후에 그의 친한 친구가 그의 입에 냄새가 난다는 말에 그리고 어머니가 한번은 그의 입에서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말에 충격을 받아서 입에 냄새를 풍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동료들과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이것이 대인관계의 단절로 이어진 것이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그는 소변이 자주 마렵다는 빈뇨증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1학년 그리고 군 복부 때까지 그는 소변이 너무 자주 마렵다는 빈뇨증으로 지끔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의 증세들 즉 입에 독약을 넣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두려움 그리고 빈뇨증의 세가지 증세가 교대로 그를 지금까지 따라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증세들이 그의 대인관계를 막는 심각한 장애물이 되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이러한 증세로써 그를 막아서 그의 자아를 보호해주고 있다는 치료자의 분석에 동의를 했다. 그의 핵심 문제는 대인공포증으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른다는 것이 그의 핵심 문제였다. 그는 그의 이러한 문제들을 피하기 위해서 표면적으로 독약을 입에 넣는다는 두려움의 공포,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두려움의 공포,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변이 너누 잦다는 두려움의 공포가 그의 생각들의 70%-80%를 점유하고 있어서 실제 그의 대인공포증 즉 사람들과 어울리는 문제를 덮어서 방어를 해 주고 있다는 치료자의 분석에 동의를 했다.

 그의 최근의 심각한 두려움의 공포는 빈뇨증으로 소변을 해도 계속 소변을 보고 싶은 생각에 가득 차 있고 소변을 보고 나서 시원하지 않고 계속 소변 생각이 80%이상의 그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빈뇨증으로 비뇨기과를 찾았고 종합 검사결과 전립선 염으로 약물 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없었다고 했다.그리고 이후에 다시 병원을 찾아 종합 검사를 해 보았으나 역시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약물치료를 받았으나 효과가 없어 중단했다.이후에 그는 그의 증세들이 심리적인 원인이라고  판단되어 "심인성 질환"이라는 책을 읽고 치료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더 붙여서 그의 증세들이 심리적이라는 한가지 증거 중에 특이한 것은 그가 수면 중에는 소변의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다. 저녁 11시 혹은 12시 경에 잠이 들면 아침 6시 경에 깨어날 때까지는 소변을 자주 누고 싶다는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고로 그의 빈뇨 증은 생리적인 것이 아니고 심리적이라는 치료자의 지적에 동의를 했다. 만약에 소변이 잦은 증세가 생리적인 현상이라면 수면 시에도 소변이 잦아서 깨어나서 소변을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는 수면 시에는 소변에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의 빈뇨 증이 고등학교 대학 그리고 지금까지 입에서 냄새가 난다는 구취증을 대신하게 되었다고 강조를 했다. 두려움의 공포가 형태가 바뀌면서 그의 대인공포증을 덮어주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 입에 독약의 두려움이 그의 초등학교 저학년의 기간을 지배를 했고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구취증으로 바뀌어서 대인관계를 막아주는 방패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것이 중학교 시절에 심했고 그리고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빈뇨증으로 대체되어서 대인관계의 두려움을 막아주는 방패로 대체 되었다.

 사실 그의 대인관계의 두려움은 대인관계 하나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대인공포증의 실체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고포였다. 그것이 사람들과 관계를 막아주면서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하는지를 모르는 대인공포증으로 바뀌게 된 것이었다. 이러한 분석은 그의 어린 시절의 정밀 분석에서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그가 처음에 치료자에게 밝혔던 것은 아버지의 죽음 직후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세밀한 분석 결과 그는 아버지의 죽음 이전에 이미 불안한 상황에 있었다는 것이 여러 가지 증거로 나타났다.

첫 번째 이벤트: 그의 부모님은 그가 어린 시절에 자주 싸웠다는 그의 회상이 있었다. 밤에 자주 다투는 소리에 잠을 깨어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두려워했던 어린시절의 기억이 있었다. 두 번째는 부모님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부모님이 이혼을 하려고 법원에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는 C군에게 아버지, 어머니가 이혼을 하면 너는 누구에게 가고 싶어냐?하는 말에 그는 망설이다가 어머니가 승용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따라 내렸던 기억이 있었다. 물론 부모님은 이혼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부모님이 이혼을 하면 어머니와 함께 살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했다.

두 번째 이벤트: 아버지가 돌아 가시기 전에 그는 소화 불량으로 자주 병원에 들락거렸다는 기억이 회상되었다. 그는 병원에 가서 소화제를 먹고 종합 검사를 했으나 위와 장에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 때 병원에서 어떤 사람이 "혹시 귀신이 들린 것이 아니냐?"라는 말에 어머니가 놀래서 병원에서 직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서 귀신 이야기를 하자 아버지가 전화로 노발대발하면서 요즈음에 귀신이 어디 있느냐?라고 했던 것을 기억해 냈다. 병원의 종합 검사에서 이상 없음으로 나오자 귀신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은 그것이 심리적인 문제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세 번째 이벤트: 그는 어린 시절에 5살 쯤의 기억 때 어머니는 아버지의 실내 장식일에 종사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 방에서 카텐을 만드는 바느질을 하고 있었고 그는 어머니 옆에 놀다가 친구들과 함께 집 밖에서 놀다가 사고를 두 번이나 당했다는 것을 회상을 했다. 첫 번째 사고는 그가 뒤로 백하는 택시에 발 뒷꿈치가 치여 벼가 골절되는 바람에 약 2달 동안 병원에 입원을 한 적이 있었고 그리고 두 번째 사고는 그가 길거리에서 친구들과 길을 건느다가 택시에 치일번한 사건이었다. 그 택시 운전수가 노발대발해서 C군의 멱살을 쥐고 방 안에서 어머니에게 끌고 가서 자식을 제대로 잘 돌보아라고 호통을 쳤을 때 어머니는 택시 운전수에게 화를 내거나 나무란 것이 아니고 C군에게 회초리를 때렸던 기억이었다. C군이 택시 운전수에게 놀랬을 것인데 어머니는 택시 운전수를 처벌한 것이 아니고 C군을 혼을 내 준 것이었다.

네 번째 이벤트: C군은 아버지가 사망 직전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생선 요리를 맛이 있다고 많이 먹어서 과식한 탓에 구토를 하고 토해냈지만 아버지는 C군을 본채만체하고 달래주거나 돌보아주지 않았다. 그것이 C군의 마음 속에 아버지에 대한 섭섭함으로 남아 있었다. 두 번째는 통닭을 사왔을 때 C군이 먼저 통닭에 손을 댄 것을 아버지가 대노 해서 가장인 아버지가 손을 대지 않았는데 아들이 먼저 버릇없이 음식에 손을 댔다고 그를 아파트 도어 문을 열고 내 쫓내 버린 것이었다. C군은 울면서 아파트 복도에 서 있었는데 마침 어머니가 들어오시다가 그를 발견하고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것이었다.

 위의 일련의 증거들은 부모님이 C군의 두려움, 공포, 불안들을 흡수해주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고로 그는 어린 유아기 시절부터 두려움과 불안, 공포로 떨고 있었고 이것이 생리적 현상으로 소하 불량으로 나타난 것이 틀림 없었다. 어린 유아들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어머니, 아버지가 그것을 흡수해서 유아를 달래주고 두려움을 흡수해서 안전과 안정을 제공해주어야 하는데 부모님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못했기 때문에 C군은 혼자서 두려운 세상에 내 던져진 것과 같은 심리적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저녁에 잠들기 직전에 소화제를 한 알씩 먹어야 잠이 왔다고 했다. 그의 심한 심리적 불안이 위와 장의 문제로 연결되어 소화불량으로 연결된 것이 분명했다.

 고로 C군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외부의 보호막이 없어져 버리자 엄청난 세상에 대한 불안, 공포감이 그를 덮쳤다. 그는 그러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아 소멸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으로 입에 독약을 넣는 공포증 증세로써 그의 자아의 방패막이를 만든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그의 무의식적으로 그가 살아남기 위해서 만든 보호적 적응이었다. 그는 그러한 증세로써 사람들을 옆에 오지 못하게 막아 버린 것이었다. 이러한 심리적 분석은 여러 명의 저명한 미국의 공포증 치료 전문가들이 그들의 공포증 치료에서 분석해 낸 여러 가지 증거들이 이것을 말해 준다.

 워싱턴 공포증 연구소의 소장으로 있는 죠지 와싱턴 의과대학 교수인 듀퐁(DuPont, 1982)은 공포증의 핵심 문제를 대인관계의 회피를 위한 방어에 있다고 강조하고 있고 그리고 미국 전역에 TV로 여러번 등장해서 공포증 문제의 대가가 된 켈리포니아의 공포증 치료 센터 소장인 아더 하디(Arthur Hardy, 1982)는 다음과 같이 공포증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다.

 "공포증의 핵심 문제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강박 사고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가장 흔한 강박 사고들이 더러움, 오염, 세균 그리고 독약이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회피에 의해서 죽음의 생각, 상실 혹은 분리의 보호이다. 어떤 점에서 공포증 환자들을 위한 그 회피 과정은 모두 침투적이어서 그것이 완전히 블랙홀처럼 에너지를 흡수해 버린다. 그들이 일어나는 순간으로부터 어떤 재난적인 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피하고 재난적인 것에 대해서 듣는 것을 피하고 어떤 불안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피한다. 이 회피가 사회적 상황으로 확대 된다." "공포증적인 사람들은 크다란 수치심을 느낀다. 대단히 수치심이 많아서 그들은 그들 자신을 숨긴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느낌들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욕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를 미워하기 시작한다. 그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처럼 수행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두려움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정상에 껍질을 씌운다. 그 밑에 숨어 버린다."

 하디(Hardy, 1982)의 설명은 C군의 증세가 심각한 공포증임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C군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그의 나이 또래의 젊은이에 비해서 수 백배 정도의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C군은 치료자의 이러한 분석에 동의를 했다. 그는 27세인 지금의 나이에 어머니가 죽으면 어떻게하나 하고 어머니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직후에 어머니가 자동차 사고로 죽으면 어떻게 하나 하고 어머니 걱정을 했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가 일을 하게 되면서 저녁 늦게 귀가 할 때 그는 집안에 혼자있는 것에 두려움에 떨었고 엄마가밖에 사고가나면 어떻게 하나?하고 초등학교 3학년 어린이가 엄마를 걱정하면서 보냈던 것 그리고 그가 2년간의 군복무 시절에 그가 근무하는 직책이 해안 경비로 적의 침투를 막는 해안 레이더 병사로써 근무를 할 때 부대장이 해안 근무를 잘못하면 적의 침투 시에는 연대 책임으로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말에 2년 동안 그의 근무는 잘못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공포심 때문에 제대로 편하게 잠을 잔 적이 없었다고 했다. 물론 이등병 때인 초반기에는 해안 경비 근무 시에 긴장해서 불안해지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그 환경에 익숙해지게 되면 안정을 찾고 근무 환경에 적응해 나기 마련인데 그는 특히 해서 전역을 하는 그날까지 그의 근무 시에는 졸거나 방심해 본 적이 없었다고 그의 군복무의 2년간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긴장을 스스로 기술하면서 치를 떨었다. 한마디로 그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 공포감으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찌에 짓눌려서 공포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 분석에서 밝혀졌고 그는 치료자의 이러한 분석에 동의를 했다.

 C군이 3개월의 분석 치료 과정의 시점에서 그의 심층의 문제들이 분석되어진 것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다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세요. 그는 치료의 과정에서 점차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복해서 퍼즐 조각을 맞출 수 있게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