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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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선택

 배우자의 선택은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서로 선택하는 사람들의 심층을 들어다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보면 우연인 것 같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뜻이지요. 많은 학자들의 연구들을 보면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우리의 내면에 깔린 무의식적인 요구에 의해서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할 때 외형적으로는 새출발을 하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가구, 새 집, 새 옷, 새로운 살림 도구들 등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머리 속에 있는 마음은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적어도 평균 결혼 연령으로 계산하면 부모님과 25년 - 27년 정도의(우리나라 사람들의 평균 결혼 연령이 남자의 경우 29세, 여자의 경우 27세로 2002년 통계청의 발표) 생활의 습관들 즉, 감정 표현 패턴, 문제 해결 능력, 사고 방식, 대화의 스타일 등 삶의 스타일은 어린시절부터 습관화된 패턴을 그대로 가지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남편과 부인이 서로 살아온 환경이 전혀 다른 새로운 두 가족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혼 후에 신혼으로 알려진 3년에서 5년 사이가 가장 위험한 기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기간이 신혼 기간으로써 가장 행복한 기간으로 알려져 있지만 결혼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는 이 기간에 이혼 비율이 가장 높다는 것이고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이혼 비율이 이 기간에 가장 높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 기간 동안은 조정 기간으로 서로에게 알맞는 새로운 생활 패턴이 자리 잡아 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 기간에 서로 갈등이 충돌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과거에 우리 부모님들이 하는 말 중에 결혼해서 초기에 남편이나 부인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 잡지 못하면 영영 고칠 수 없다는 말은 이러한 조정 기간에 서로 합의에 의한 즉 협상으로써 서로의 행동을 서로 수용할 수 있도록 조정이 되어지면 이후에는 고착된 행동으로 습관화 된다는 의미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돈의 관리, 가사 분담, 자녀 양육, 시부모, 친정 부모들과의 관계, 시가와 친가와의 관계, 여가 생활, 섹스 문제 등에서 서로 협상을 통해서 새로운 가족 관계의 룰(rules)이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이 새로운 대인관계의 룰(rules)들이 이후에 그 가족 구성원들의 행동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혼에서 주된 갈등은 우리가 어린시절에 성장한 가족들과의 관계 패턴이 습관화 되어 남아 있어서 쉽게 변하지 않아 서로에게 조정되지 못해서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을 할 때 우리는 파트너나 배우자에게 거는 기대와 소망들이 있습니다. 내 자신이 어린시절에 자라면서 가지고 있던 이루어지지 않은 소망들도 함께 가지고 간다는 것이지요. 내 자식은--, 내 남편은--, 내 부인은--, 나는 결혼 후에 --등등 마음 속에 새겨둔 것들이 결혼 생활에서 하나씩 나타나게 되고 결혼 생활을 해 나가면서 이것을 이루려고 하게 됩니다. 문제는 어린시절에 이루지 못한 소망과 기대가 많을 수록 우리는 결혼에서 그 것을 이루어서 보상을 받겠다는 마음이 많을 수록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대와 소망이 많다는 것은 어린시절에서부터 결혼 전까지의 이루어지지 않았던 소망이 많다는 것이고 결혼에서 이것을 이루겠다는 마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거는 기대가 많을 것이고 그것 때문에 결혼이라는 삶의 영역이 부부 사이에 전쟁터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결혼을 성장과정에서 이루어지지 못하였던 것을 이루는 심리치료의 장(場)으로 과거에 내가 가지지 못했던 것을 쟁취하려고 하는 전쟁터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내 부모가 나에게 해 주지 못했던 것들을 보상 받기 위한 곳이 결혼 생활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배우자에게 어린시절에 부모가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나에게 해달라고 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배우자에게 나의 좋은 부모가 되어달라고, 내가 충족하지 못했던 욕구를 충족시켜 달라고 무의식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갈수록그 기대가 충족이 되지 않으면 않을수록 원망과 실망과 좌절에서 오는 분노, 적대감정이 배우자에게 혹은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자녀에게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선택 과정

   내 욕구와 기대를 가장 잘 충족 시켜줄 파트너를 결혼의 대상으로 선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선택이 어린시절에 충족되지 못한 내 욕구와 기대, 소망 충족의 대상으로 선택되어지면 그 결혼은 치료받지 않으면 끝없는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을 해서 양가 부모가 뜯어말리는 결혼을 한 커플들이 결혼 몇 년이 지나간 후에는 서로 원수지간이 되어 물고 뜯고 끝없이 싸우는 꼴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부모나, 형제들이나 친척들이 서로 그렇게 사랑한다고 죽고 못살던 사람들이 서로 원수지간이 된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모와의 갈등에서 탈출의 수단으로 결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은 결혼을 자신의 문제로부터 피난처로 삼은 셈이지요.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 결혼을 선택한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배우자를 문제 해결사로 고용한 셈이 됩니다. 결국은 문제 해결사로 고용한 배우자가 자신의 문제 해결을 해 주지 못한 경우에는 끝없는 적대감과 분노가 배우자에게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본다면 부모에게로 흘러가야할 분노와 적대감정이 배우자에게로 방향이 바뀌어서 흘러가고 있는 셈이 됩니다. 이것이 왜 결혼 후에 세월이 15년 정도가 흘러가면 배우자에게 서로 그렇게 많은 적대감정과 분노가 흘러가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사실은 그 절반은 부모에게로 갈 분노와 적대감정이 실망과 좌절을 준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 배우자, 기대를 충족 시켜주지 못한 자녀들에게 흘러가게 된 것이지요. 어린시절에 부모로부터 받은 실망과 좌절이 무의식 속에 묻혀 있다가 한꺼번에 폭발을 한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부모에게 그렇게 많은 분노를 토해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배우자나 자녀에게는 얼마든지 토해낼 수가 있습니다.

 부부 사이에 사랑과 부모와 자식사이에 사랑은 그 종류가 다릅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사랑을 에카페 (ecape)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에카페 사랑은 대가가 없습니다. 헌신과 희생적인 사랑이 됩니다. power가 한쪽에 치우쳐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의존해 있습니다. 자녀는 미성숙하기 때문에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모에게 전권이 주어져 있지요. 부모는 자식에게 부모를 사랑하고 있느냐고 확인하거나 물어보고 사랑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에 부부나 연인 사이에 사랑을 에로스(eros)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부부 사이에 사랑은 서로 주고 받는 사랑입니다. give & take 사랑입니다. 주는 것만큼 받아야 합니다. 연인 사이나 부부 사이는 사랑을 확인하게 됩니다. "나는 당신에게 당신의 생일날 선물을 했는데 당신은 내게 해 준 것이 무엇이냐?"고 따지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연인 사이에서 혼자서 짝 사랑을하는 것이 왜 사랑으로 성립되지 않는가? 하는 이유이지요. 부부 사이는 대등관계이기 때문에 power가 비슷합니다. 타협과 협상에서 power가 비슷합니다.

 부부 사이에 사랑이 에카페 사랑이 되면 한쪽은 power가 일방적이고 다른 한 쪽은 의존적이어서 power가 없게 됩니다. 한쪽이 보채는 어린 아이처럼 매달리고 한 쪽은 끝없이 원하는 것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결국은 부모 역할을 하는 배우자는 질리게 됩니다. 거리감을 두려고 하게 되지요. 여기에서 배우자는 한쪽은 부모의 역할을 하고 다른 한 쪽은 자녀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결국 아버지와 딸이 같이 살거나 어머니와 아들이 같이 사는 꼴이 되어버립니다. 무의식적으로 한 쪽은 부모의 역할을 하게 되고 다른 한 쪽은 자녀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녀의 역할을 하는 배우자는 미성숙하고 어린아이처럼 보채는 배우자가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한쪽은 부모 역할을 하고 있고 다른 한 쪽은 자녀 역할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부부가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와 딸과의 관계, 어머니와 아들 관계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부부들은 자기 스스로 이러한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끝없이 한 쪽은 어린아이처럼 보체고 다른 한쪽은 받지는 못하고 끝없이 주어야 하니 질식을 느끼게 되어 도망을 가거나 거리감을 두어서 질식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려고 외도를 하거나 문제 행동을 일으키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다시 어린시절과 연결 시켜 보면 어린시절에 부모와의 관계에서 내가 받지 못했던 것들 즉 충족되지 못한 욕구와 소망, 기대가 결혼 후에 나도 모르게 배우자에게로 흘러가서 결국은 결혼 전에 부모와 나의 관계가 결혼 후에도 역시 과거의 부모와 자녀 관계로써 변장하여 재등장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해결되지 못한 나의 문제는 다시 나와 내 배우자의 세대에서 부모와 나의 세대가 되풀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변한 것입니다. 과거가 되풀이 되고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부모와의 관계가 재연된 꼴이 된 것이지요. 배우자 자신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끝없이 갈등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싫어했고 절대로 닮지 않겠다고 했던 내 과거의 부모의 모습을 지금 현재 내가 부모처럼 되풀이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놀랠 것입니다. 결국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은 다시 되풀이 되고 다시 그것이 내 자식한데로 대물림이 되어 끝내지 못한 드라마는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왜 내가 싫어하는 나의 부모의 모습을 싫어하면서도 재연하고 있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어린시절에 못다한 내 노래가 다시 내 부모의 세대에서 내 세대로 이어져 불리우고 있고 이것이 다시 내 자식들 세대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는 창조되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는 과거의 재 반복이 되고 있기 때문에 삶은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삶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삶이 고통스러운 과거의 반복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지요. 지루하고 재미가 없고 삶에 열정이 없고 오래된 고장난 레코드를 반복해서 듣고 있는 꼴이 된 것입니다. 똑 같은 노래를 계속해서 듣고 있는 꼴이고 옛날에 한번 보았던 연속극을 재방영하여 매일 같이 보고 있는 꼴이니 삶에서 즐거움이나 재미가 있을 수가 없지요.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재방송만 되풀이 하고 있으니 내일에 희망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그 희망은 희망으로 끝나고 말아 버리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던 것을 재 방영을 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지루하고 재미가 없고 흥미가 없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내 인생이 성장과 발달로 새롭게 창조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어린시절의 나, 과거에 부모들의 삶이 그대로 재방영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빨리 손을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자의 힘으로는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십시오.